매거진 단상 모음

구피

by 최명숙


구피가 우리 집으로 온 게 팔 년 전이다. 처음엔 스무 마리쯤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오십 마리 정도로 늘었다. 배가 볼록한 놈이 생기더니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항을 두 개로 해서 분가시켰다. 누가 가족인지 지인인지 모르니까 바로 옆에 붙여 놓고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물에 살다가 나누어지는 것만도 아쉬운데 생사도 모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 이 구피 키우기 쉬워. 좀 데리고 가세요.” 동생 집에 갈 때마다 권했다. 딸을 결혼시키고 혼자 지내는 내게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보든가 정 그것도 아니면 구피라도 키워보라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동생네 가면 큰 어항에 구피 수백 마리가 헤엄치는 걸 한참씩 들여다보곤 했는데,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움직임이 생동감이 보기 좋을 뿐이었다. 동생의 몇 번 권유 끝에 분양해 왔다.


우리는 14층이어서 집안이 좀 건조한 편이었다. 그래서 식물을 여럿 키우는데 구피도 그래서 키우기로 한 거였다. 온이가 돌 때쯤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오면 구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생명체가 신비로웠던 모양이다. 말을 배울 즈음엔 우리 집에 물고기 보러 가자고 졸랐다. 역시 움직이는 생명체는 기억하게 되는 존재인 걸까. 구피가 오면서 건조하던 집안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는 듯하다.


어느 날 어항 청소를 하려고 보니 구피 치어 수십 마리가 꼬물거렸다. 한 마리라도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청소하고 넣어주었다. 나갔다 들어와도 구피부터 살폈다. “잘 있었어? 오늘 날씨는 무척 더웠어.” 듣거나 말거나 구피에게 말을 걸었다. 이틀에 한 번씩 밥을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물 위로 올라와 먹이 무는 모습을 보았다. 살기 위해 먹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나의 일상은 더없이 바빠지고 구피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다. 그래도 적당한 때 어항 청소를 해주었고, 먹이를 주었으며, 가끔씩 살피기도 했다.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건 삼 년쯤 지나서부터였다. 구피 수가 줄어든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러다 또 새끼를 낳으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구피는 새끼를 잡아먹는다던데 그런 끔찍한 일이 우리 집 어항 속에도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바쁜 일상에서 어느 땐 한동안 구피를 잊고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어항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두 어항에 있는 걸 다 합쳐도 열 마리밖에 안 되었다. 번식시키기 위해 한 어항으로 합쳤다. 가만히 보면 어떤 구피의 배가 볼록한 것 같아 기대에 부풀어 새끼 낳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허사였다. 며칠이고 배가 부른 채 있다가 며칠 후 아예 한 마리가 줄었다. 그렇게 한 마리씩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마리만 남았다.


지금 우리 집 어항에는 구피 한 마리만 살고 있다. 삼 년째 혼자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온 후로 나는 구피에게 관심 두지 않는다. 대신 아들이 밥 주고 말 걸어준다. 우리 구피, 우리 구피 하면서. 혼자인데 자주 밥 주지 말라고 해도 아들은 조금씩이라도 매일 준다. 가끔 들여다보면 좁았던 어항이 넓어 휑한 느낌이 든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구피는 천천히 어항 속을 헤엄친다. 혼자여서 그럴까,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다. 어쩌면 노화되어 그럴지도 모른다.


엊그제 어항 청소를 하며 깜빡 잊고 물을 다 버렸다. 반쯤 남겼다가 새로운 물과 섞어줘야 하는데. 쏟아버린 물을 다시 담지 못해 건망증만 탓했다. 한 마리 남은 구피마저 저세상으로 보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새로 받은 물로 어항을 채웠다. 그리고 구피를 넣어주었다.


구피는 한동안 인조수초 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저러다 이제 가겠구나 싶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미안해, 미안해 구피야! 제발 힘을 내.” 그날 저녁 내내 구피는 그렇게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먹이를 주고 동태를 살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아, 나무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약간 움직이는 듯하다 그대로 그만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항 앞으로 갔다. 허연 배를 내밀고 둥둥 떠 있으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구피가 꼬리를 흔들며 살살 헤엄치고 있었다. “구피야, 살았구나! 살았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이 올라왔다. 아들도 반가워했다. 우리 둘은 손을 맞잡고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구피처럼 키우기 쉬운 물고기가 없다는데, 겨우 한 마리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생네 가게 되면 몇 마리 더 데리고 와야겠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혼자는 다 외로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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