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살폈다, 봄까치꽃 군락지를. 드디어 발견했다. 연보라 꽃잎이 이른 봄바람에 한들거리는걸.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더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꽃이 아닌가. 설 지나 바로 피는 꽃이 봄까치꽃이다. 봄을 가장 먼저 알려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봄’과 ‘까치’ 두 단어의 합성어인 듯한데, 기쁜 소식을 알리는 새가 까치이고, 그 까치가 봄을 알린다는 의미라면 봄소식을 알리는 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파트 정원 측백나무 길을 돌아, 범부채 군락지 지나 바위나리 무더기 쪽으로 해서, 개울가 내려가는 길 옆 산수유나무 아래 돌계단 틈새, 거기. 산수유는 볼록해지는 꽃눈을 달고 이른 봄바람에 오들 거리고 있는데, 그 옆 박태기나무에는 아직 꽃눈도 나오지 않았는데, 목련은 털북숭이 껍질에 쌓여 아직 꽃필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데, 저 새끼손톱보다 작고 앙증맞은 꽃이 찬바람 무서워하지 않고, 피었다.
어쩌면 저리도 작을까. 어쩌면 저리도 용감할까.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밤에는 달빛이, 낮에는 햇볕이, 산수유나무에 앉아 꼬리 흔드는 동고비가, 꽃 필 힘을 보태주었을까. 어쩌면, 산책할 적마다 들여다보며, 아직 안 피었네, 어서 힘을 내! 나지막이 종알댄 내 말을 들었던 걸까. 저리도 작고 용감하며 고운 봄까치꽃이 어느 봄꽃보다 먼저 피다니, 경이롭지 않은가.
한참 앉아서 봄까치꽃을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뭘 보느냐고 물었다. 여기 좀 보세요, 봄까치꽃이 피었어요. 내 말에 빙그레 미소 지을 뿐 꽃을 보는 사람은 없다. 하도 화려하고 예쁜 꽃을 많이 보아서 이 작은 꽃에 감동하지 못하는 걸까. 바쁘게 갈 곳이 있어서 여유가 없는 걸까. 산책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꽃이 피었네요, 봄까치꽃이 피었어요. 산책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소년 둘이 손을 잡고 지나간다. 얘들아, 이리 와 봐! 꽃이 피었어. 두 소년이 다가왔다. 어디요? 역시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여기야, 여기! 내 옆으로 다가온 소년들이 가리키는 봄까치꽃을 보려고 고개를 숙였다. 솜털이 보송보송 탱글탱글한 볼이 발그레하다. 여기 봐봐, 아주 앙증맞지? 귀엽고. 두 소년은 실망한 표정이다. 워낙 작은 데다 한 송이만 피었으니까. 그걸 모를 리 없다. 두고 봐, 매일매일 한 송이 두 송이 계속 피어날 거야. 소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버렸다.
대부분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긴 세상에 볼 것이 얼마나 많고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작은 꽃에 관심을 두랴. 한참 보고 있노라니 따뜻한 햇볕이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온기 서린 눈길을 봄까치꽃에게 보내 주었다. 이 꽃이 피면 봄이 온다. 추위가 심한 겨울을 보내노라면 더욱 꽃을 기다린다. 지날 때마다 봄까치 군락지를 들여다보는 이유다. 봄까치꽃은, 아니 자연은 정해진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내가 자연을 좋아하는 또 하나 이유이기도 하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 추위 후엔 반드시 봄이 오고, 어려움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책상 앞 벽이 써 붙인 문구가 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우습게도 그 사자성어는 삶의 고비마다 힘이 되어 주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이지만 어려움을 견디고 나면 행복이 온다고 믿었다. 봄까치꽃도 눈과 찬바람을 견디고 저렇듯 꽃을 피운 게 아닌가.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설이 길면 진리가 아닐지 모른다. 이제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리라.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그 본질만 떠올려야 한다. 거기에 사욕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크게 허물은 없으리라. 봄까치꽃이 피는 데에 난관이 있었듯 삶의 여정에 어려움이 있겠으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양심에 꺼리는 일, 본질에서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고, 인욕을 멀리하며 단순하게 산다면 내 생애의 꽃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봄까치꽃, 고 귀엽고 앙증맞은 꽃이 피어 봄을 알린다. 이제 다투어 두 송이 세 송이 막 피어나 웃음 담뿍 짓게 하리라. 그럴 때쯤 두 소년들도 봄까치꽃을 들여다볼지 몰라. 봄까치꽃 잎새처럼 솜털 보송보송 탱탱한 볼을 하고. 살그머니 미소가 감돌았다. 몸을 일으켜 개울가 산책로로 내려섰다. 훈기 가득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