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by 최명숙

에잇! 겉은 멀쩡한 볼펜 잉크가 또 안 나온다. 무슨 기념일이나 행사에 갔을 때 받은 것이 있고, 내가 구입한 것도 있는데 모두 오래 방치했다. 필요해 쓰려고 하니 잉크가 말라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볼펜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손으로 쓸 일이 있을 땐 만년필을 사용했다.


종이에 대고 마구 끼적여본다. 안 나온다. 인내심을 갖고 또 스크리블 한다.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더운물에 한동안 담가둔다. 말랐던 잉크가 풀려 나오길 기대하면서 기다린다. 웬만큼 시간이 지난 후 꺼내 다시 또 끼적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또 따뜻한 물에 담가둔다. 다 식었을 때 꺼내 또 스크리블 한다. 역시 잉크는 나오지 않는다. 값으로 친다면 얼마 되지 않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쓰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다.


내친김에 볼펜을 모두 점검한다. 쓰지 않은 볼펜이 꽤 많다. 끼적여보고 나오지 않는 건 모두 따뜻한 물에 담가두었다가 꺼내 써보니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하다 인터넷 검색을 한다. 잉크 마른 볼펜. '잉크 마른'까지만 써도 여러 정보가 검색된다. 나와 같은 경험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경험과 함께 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지만 이미 내가 다 시도해 본 것들이다. 할 수 없다. 볼펜이라서 해서 유효 기간이 없을까.


볼펜을 점검하다 괜찮은 걸 하나 발견했다. 노랑, 빨강, 분홍, 초록, 파랑, 검정 자그마치 여섯 가지 색깔이 들어 있는 볼펜이다. 내가 구입한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 물품이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것일까. 딸이 사무실에서 쓰던 것일지도 모른다. 퇴직할 때 갖고 나온. 이거 하나면 일 년 쓰고도 남을 것 같다. 더구나 다양한 색깔이 한 자루에 들어 있어 유용하게 쓸 것 같다.


연보라색 통통한 몸체를 가진 볼펜. 여섯 개 볼펜심을 품고 있어야 하니 통통할 수밖에 없다. 손에 가만히 쥐어본다. 통통한 몸체인데도 불편하지 않게 손가락에 잡힌다. 몸체 색깔인 연보라와 여섯 가지 색이 은은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동안 나는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딸이 쓰던 거라면 연필꽂이에 있은 지 십 년은 되었다는 이야긴데, 그 세월이 되도록 내 눈에 띈 적이 없다는 게 새삼 놀랍다.


잉크가 나와 사용할 수 있을까. 흰 종이를 꺼낸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끼적여보기 전에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잉크가 안 나올 것만 같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마르지 않았을 리 없다. 십 년 가까운 세월이잖은가. 사용한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으니 그대로 말라버렸을 것만 같다. 색깔이 이렇게 예뻐도 사용할 수 없다면 버려야 한다. 아니, 잉크가 나오지 않더라도 연필꽂이에 두어야겠다.


거기까지 결심하고 흰 종이에 스크리블 시작! 먼저 빨간색이다. 흰 종이에 선명하게 빨간색 선이 그어진다.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이번엔 파란색이다. 그려진다. 노란색도, 분홍색도, 초록색도, 검은색도. 모두 잉크가 잘 나온다. 우와! 쾌재를 불렀다. 횡재한 느낌이다. 다시 돌아가며 색깔 별로 글씨를 써본다. 아주 부드럽게 선명한 색깔로 글씨가 써진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십 년 세월 동안 기다렸구나. 고마워. 내가 무심했지? 연보라색 볼펜에게 말을 건넸다. 아, 이름도 지어줄게. 생각 좀 해보고. 보라돌이, 통통, 펜돌, 궁리한 끝에 ‘통통’이라고 지었다. 물품에 이름 붙이기 즐기는 내게 이런 유희는 자연스럽다. 전에 타던 차 소냐, 지금 타는 차 프린, 안고 자는 악어 같이 생긴 인형 악우. 이제 통통이는 내 손에 자주 들려 있으리라. 통통아, 이름 마음에 들어? 속으로 묻는다.


조금 전까지 잉크가 마른 볼펜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통통이 덕분이다. 한 편으론 불가사의하다. 어떻게 십 년 동안 사용한 적 없는데, 새로 산 볼펜처럼 잉크가 잘 나올까.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본질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게 훌륭할 뿐이다. 저 볼펜이 날마다 새로워졌기 때문일까.


그래, 나도 새로워지자. 저 옛날 중국의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이 목욕하는 그릇에 새겼다는 글귀처럼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 아마도 볼펜은 그렇게 십 년 동안 새로워지기 위해 수양했던 걸까. 그래서 그 본질을 유지한 걸까. 아, 비약이 심하다 못해 판타지다. 요즘 판타지소설을 읽다보니 생각이 이입되나 보다. 하지만 탕왕이 반명(盤銘)에 새긴 글귀는 오늘도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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