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완결

by 최명숙

완결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끝났다, 백일백장이. 겨울이 한창인 지난해 12월 29일에 시작해, 오늘 4월 7일에 마쳤다. 백일 동안 매일 한 편 글쓰기가. 어떤 사람은 천일도 한다는데 그에 비하면 10%밖에 안 되지만 백일 글쓰기를 완결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함함하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냈을 때 대부분 진한 쾌감을 느낀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을 텐데, 그 시작이 이렇게 의미 있을 수 없다.


내 성격 가운데 장점이,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것이다. 도중에 하차하는 걸 못 견딘다. 하지만 그것이 오만이고 교만이라는 걸 지천명의 나이쯤에 깨달았다. 끝까지 노력해 이루는 일이 되풀이되니 신념이 생겼고 어느새 나는 그 신념을 신봉하고 있었다. 두려웠다, 어디까지 그 신념이 나를 끌고 갈지. 나이 들면서 신념처럼 무서운 게 없다는 걸 깨닫고, 과감하게 그것을 버리기로 했다. 장점은 장점대로 가지되, 항상 변수를 인정하기로.


이번에도 그랬다. 끝까지 가는 걸 기본으로 하겠지만 급한 일이 있어 못 쓰게 될 때는 건너뛰고 다음날 두 편 쓰기로 했다. 그것도 어려우면 하루나 이틀 아니 더 며칠이 연장되더라도 백 편을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바꾸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조급함이 사라지고 부담감이 없어졌다. 자유롭게 즐기면서 백 편을 써보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물론, 할 수만 있으면 정한 날에 마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하루 적절한 글감 찾기를 염두에 두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글감이 없어 못 쓴다는 건 엄살이다. 일에 집중하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글감을 물색하고 머릿속에 개요를 짜서 넣어두었다. 그리고 쓸 시간이 주어지면 망설이지 않고 컴퓨터를 열었다. 대략적인 개요가 이미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문장 쓰고 단락 구성하는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그렇게 작성한 글을 문학회 카페에 올리면 그날 과제를 했다는 것에 마음이 후련했다.


제자들 중에 백 편 다 쓴 사람이 있고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 참여하진 않으나 글 읽는 독자로 자리를 채우는 제자들도 있다. 모두 함께 달린 문우들이라고 생각한다. 격려하고 응원하며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우리는 서로 하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쓰지 못했다 해도 쓰고 있는 문우들을 보면서 언젠간 나도 써보리라 결심하거나 다짐하지 않았을까.


백 편의 글이 모두 완성도 있다고 할 순 없다. 어느 글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날것들이다. 이 날것을 몇 번 퇴고하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리라 믿는다. 한 시간 전후로 쓰는 이 글이 어떻게 완성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마 대문호가 될 자질이 충분한 사람일 게다. 우리 모두 감히 그런 경지에 이르진 못했다. 나는 아주 사소하고 별 의미 없는 것 같은 글감으로 시답잖게 쓴 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완성도가 있든 없든 백 편을 쓰는 동안 확실히 글 쓰는 도구에 기름칠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군인들도 의무적으로 하는 게 총기 손질이라고 하지 않던가. 먼지를 닦아내고 조이고 필요한 곳은 수리하고 기름 치는 일을 백일동안 한 것 같다. 먹이 찾는 하이에나처럼 적극적으로 글감을 찾았고, 머릿속에 개요를 짜 간직했으며, 시간 나면 가차 없이 컴퓨터를 열었다. 열자마자 쏟아지는 문장을 담느라 자판 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완성하고 나면 맛있는 음식 먹을 때보다, 재밌는 오락 하는 것보다 더한 쾌감을 느꼈다.


글 쓰는 일은 끊임없이 현실을 바라보고 문제나 의미 찾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을 자세히 살피고 들여다보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한 번 주어지는 삶을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힘들고 거친 현실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본분을 잊는다. 하지만 이 글 쓰기 통해 자신을 성찰하면서 곧추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글쓰기가 주는 힘이다.


그 힘 믿고 해낸 백일백편 쓰기, 이 글로 완결한다. 글의 완성도나 수준 떠나 백일동안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는 게 뿌듯하다. 백일동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쓰지 못할 때는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밀린 글을 쓰면서 어깨가 아픈 적도 있었으며, 선생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다 쓰고 나니 축배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다. 목표로 했던 걸 이루고 났을 때, 그 쾌감은 그동안 있었던 애로를 다 잊게 한다. 그게 목표 달성의 매력이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또 나만의 글쓰기에 주력할 예정이다. 올해 목표로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동안 백일백장 쓰기 경험은 기름칠한 도구처럼 글쓰기에 힘을 보탤 테고, 나는 완결의 뿌듯함을 다시 맛보기 위해 노력하리라. 완결, 그 힘은 확실히 세다. 화르르 피어난 봄꽃이 유난히 눈부시다, 백일백장 쓰기를 마친 우리 모두를 축하해 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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