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자, 글쓰기를

by 최명숙


매일 글 한 편 쓰기 쉽지 않다. 하루에 세 편씩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대단한 힘이다. 나도 산문집 출간할 때 그런 적이 몇 번 있긴 하다. 무엇엔가 강한 이끌림으로. 그 이끌림은 황홀했고 설렜으며 후련했다. 요즘 매일 한 편씩 쓰는 글은 그런 이끌림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과제처럼 하는 일이다. 제자들과 쓰고 있는 것이라서 솔선수범하는 심정으로.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르므로 쓰다 보면 괜찮은 글이 나올지 누가 알랴!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은 적잖이 요행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말에 신빙성도 내포하고 있다. 여름 하늘에 몰려다니는 구름이 보이다 그 구름이 뭉쳐 검게 바뀌고 급기야 비가 오는 걸 수없이 목격하지 않았던가. 가뭄이 계속될 때엔 하늘 끝에 떠오르는 구름 한 조각에 희망 품는 농부들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요행성 보다 신빙성으로 다가온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누가 알랴! 어느 글감이 명작으로 형상화될지 누가 알랴!


그러니 황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는 격이든,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치는 걸 잡는 격이든,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로또 당첨이 되는 것 모두 운 좋은 걸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다. 뒷걸음질을 쳤거나 그곳을 지났거나 로또복권을 사는 것 같은 행위를 했기 때문에 맞닥뜨린 행운이다. 그러니 완성도 있고 수준 있는 글을 건져내는 것도 꾸준히 그 행위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오래전 제자 윤군처럼 매일 구상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다 좋은 글감을 만나면 온 힘을 다해 완성도와 수준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어느 정도의 노력이냐,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나 ‘해산’의 고통을 견딜 만큼의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해 이겨 기어코 축복을 받아내는 만큼의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둘 다 적당한 비유일 듯하다. 그렇게 완성도와 수준을 갖춘 글쓰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리라.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해산의 고통’이나 ‘야곱의 씨름’ 같은 걸 느끼거나 해본 적이 아직 없다. 그래서 명작을 쓰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만큼 글쓰기에 절박함을 느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나는 ‘프로’가 아닌 걸까. 아니면 프로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해산의 고통이나 야곱의 씨름 같은 건 악착스러움이 아니고 내겐 ‘노력’을 의미한다. 그 노력은 글이 완성된 후 쾌감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즐겁다.


널리 인용되고 있는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이다. 배움을 이야기하면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는 말이니, 배우는 것에서도 즐기는 사람이 가장 낫다는 뜻이리라.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게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지만 그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글을 잘 쓰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만 그보다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것 또한 더 괜찮은 일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아는 것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는 것으로 바꿔 본다면, 나는 확실히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이나 야곱의 씨름을 가르칠 때나 말하고 실제로 나는 경험하지 않았다. 허허, 이런 엉터리 선생이라니, 통탄스런 일이긴 하다. 쉿!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겐 비밀!


좋은 글감이라는 말은 쓰고자 하는 주제를 잘 드러낼 수 있고 독창성 있는 것을 일컫는다. 남들이 여러 번 써낸 글감은 진부한데, 그것으로 완성도 있고 수준 높게 쓰긴 더욱 힘들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글감은 진부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신선하면 독창성 있는 글이 될 수 있다.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으레 보고 느꼈던 것과 달라야 한다. 처음이 어렵지 그것도 자꾸 해보면 흥미롭다.


얼마전에 쓴 ‘볼펜’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물었다. 볼펜 한 자루로 어떻게 그리 긴 글을 쓸 수 있느냐고. 사실 더 길게 쓸 수도 있다. 수필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 쓴 것이지, 단편 소설도 쓸 수 있는 글감이다. 말라버린 볼펜 잉크와 말짱하게 잘 나오는 잉크를 모티브로, 상반되는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설은 허구이므로 얼마든지 서사를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글감을 가지고 어떤 문학 장르로든 표현해 낼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 글감이 될 만한 것을 먹이 찾는 하이에나처럼 찾자. 관점을 바꾸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찾은 후엔 즐기면서 쓰자. 그러다 어찌 알랴! 대작이 나올지, 세기의 명작이 나올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재밌는 글쓰기를 사람들은 왜 안 하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페인트칠도 즐기는 ‘톰 소여’처럼 글쓰기를 즐기자. 친구들이 한 번만 해보자고 해도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일을 왜 너희를 시키겠냐며 느물거리는 톰 소여의 여유를 갖고 즐기자. 즐기자, 즐겨보자, 글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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