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17. 이혼 93일 차
117. 이혼 93일 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4년 6월 1일 일요일 맑음
“고모부, 나랑 자고 가요.”
막내 처남 딸이 귀염을 떨었다. 녀석은 안방 침대에서 오른쪽에는 고모부, 왼쪽에는 아빠를 눕게 하고, 자신은 가운데를 차지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잠에 빠졌다. 목이 말라서 일어난 김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가방을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장모님과 여자가 일어났다.
“갈려면 같이 가.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
여자가 따라나서며 “집으로 갈 거야? 어디로 갈 거야?”라고 물었다. 그가 “잠실(빌딩)에 데려다주라.”라고 말했다.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 그는 방수 문제로 걷어 두었던 옥상의 인조 잔디를 다시 깔기로 했다. 오전에 하려다 더위에 미뤄두었던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여자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며 메일을 보내왔다.
“당신과의 인연을 하나하나 정리하려는 과정에서 생각해 보니 당신에게 받은 상처나 서운함보다는 행복했던 시간이 더 많이 떠오르네요. 그동안 남편으로, 아빠로, 22년 동안 수고 너무 많았습니다. 당신의 그늘과 보호 아래 늘 든든하고 자랑스럽고, 조금은 속물처럼 살았던 것도, 당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그 울타리 안에서, 당신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다 보니 제 인생도 벌써 오십을 앞둔 늙은 아줌마라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제 6월 3일이면 당신과 저는 남남이 됩니다. 지금 이 좋은 감정도 그날이 지나면 조금은 어색해지고, 각자 욕심도 생기고, 해주려고 했던 것들도 해주기 싫어하고, 사람인지라 아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헤어지기로 했지만, 일부 위자료로 받은 1억까지 다시 당신께 보냈던 것도,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저는 당장 필요하지 않아 모른척할 수 없어 다시 보냈던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야 아이들도 살고 제 (남은 재산분할) 위자료도 받을 수 있을 테니! (합의이혼 선고) 날짜는 다가오는데 정리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구체적인 합의가 필요해서 이렇게 힘들지만 정리해 봅니다. 지금 당장 위자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나중에 가서 소송 이런 지저분한 것을 피하고자 하니 당신도 제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사정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이혼) 합의서에 명시된 7억 중 3억은 6개월 이내 지급한다.(재산분할 합의서 참고)
6개월 이내 3억 원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월 몇% 이자로 지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2. 나머지 4억은 이혼과 동시에 지급한다고 했지만, 사실 합의서대로 진행되지 않아 정확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사는 아파트에 12월 말까지 3억 원에 그대로 거주하기로 해, 3억 원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혼과 동시에 전세계약서 작성하고 아파트에 전세권 설정이라 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출이 많아 보호받기 힘들겠지만, 그것이라도 붙들 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당신이 잠실빌딩에 위자료 명목으로 (근저당) 설정해 주신다면 더욱 고맙겠지만 제 욕심이겠지요.
3. 양육비입니다. 매월 150만 원 지급한다고 했습니다. 3학년 이제 수능 6개월 정도 남아 과외를 요구했습니다. 학원비 학교 교육비 등 포함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양육비를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1억 원 당신께 보내드린 그 금액에 대해 이자 명목이든 양육비 명목이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어제 대출받은 것으로 주셔도 좋고요. 그래야 저도 삽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현금은 당신이 어제 2천(만 원) 보내주신 것 포함 3천 정도밖에(주식 빼고) 없어 생활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직장을 구한다 해도 수능 끝나고 직장 생활할 것입니다. 연말까지 버텨야 합니다. 확정된 금액 답변 부탁드립니다.
4. 자동차입니다. 딸을 밤이면 1시에 픽업하러 다닙니다. 이혼하면 부부특약 보험도 안 되므로 사고가 생기면 무보험 사고가 되는 것입니다. 올해 말까지 당신과의 위자료 문제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돌려 드릴 테니 제 명의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자가 보낸 글의 제목은 ‘홀로서기’였다. 홀로서기. 여자는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딱히 쓸 말이 없었다.
“글로 적었든, 그러지 않았든 첫 마음처럼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겠습니다. 나이 오십에 쓰레기처럼 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최우선으로 아내와 가족들의 채무를 청산하도록 할 것입니다. 김경만 드림”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참으로 사람의 일이란 ‘내일을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안양 건축 현장이라도 다녀오려고 주차장 상황을 CCTV로 확인했다. 역시나 렌터카 사업을 하는 301호 입주자 차가 막고 있다. 깨우기 뭐해서 마음을 접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은 임차인과 주차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침이 밝아왔고 그도 잠에 빠졌다.
그가 안양 빌딩 건축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가 다 될 무렵이었다. 외벽 돌 부착 작업은 마무리되어 코킹 작업만 남겨두었고, 창틀과 엘리베이터가 설치 중이었으며, 5층 주택 바닥과 벽체 미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가 창틀과 벽면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내미의 재롱에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창틀 말인데요, 폼을 뿌렸어도 틈새가 보여요. 꼼꼼히 작업하라고 지시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거 말입니까? 틀만 잡아 놓은 겁니다. 시멘트로 다 바를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콩나물해장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인데도 손님이 많았는데, 딸로 보이는 두 처녀가 서빙하고 있었다. 좌식을 선호하지 않는 그가 테이블로 들어가자, 옆 테이블의 중년 여성이 의자를 비틀어주었다. 메뉴는 역시 콩나물해장국이었다. 이 집은 종지에 날달걀을 내어온다. 칼칼한 콩나물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거북했던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날달걀을 풀어놓은 종지에 뜨거운 국물을 몇 숟가락 떠 붇다가 해장국 뚝배기에 다시 붓고 김 가루를 몇 젓가락 얹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현장으로 돌아왔왔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것이다. 여자의 전화를 받은 때도 이때였다.
“어디야? 얘기 좀 하게.”
그렇지 않아도 가는 길에 집에 ‘들릴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다. 잠시 후, 빙그레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주는 여자에게 “채무자 왔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오라고 하면 잽싸게 와야 하는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도 안다. 내일 모레면 이혼 날인데 ‘어떤 확답을 받고 싶어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자금 사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에 마땅히 해줄 말도 없다. 여자가 말했다.
“돈 한 푼도 못 받고 이혼당하는데 뭔 이야기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그러게 말이야~”
“딸도 이제 과외비로 돈이 좀 들어가.”
“그러면 이혼 후 양육비에 백만 원 더 보내줄게.”
“그러면 아예, 백만 원 따로 주는 것까지 350만 원을 보내.”
“그러자, 그럼 슬기 통장으로 양육비조로 350만 원을 입금하는 것으로 할게. 그런데 아예 안양 빌딩을 가져가는 것은 어때?”
“어떤 조건으로?”
“12억 3천 대출을 인수하고 가져가면 되는 거지.”
“7억은?”
“가치가 22억 정도 되는데 나중에 팔아 회수하는 거지. 그동안은 고시원을 운영하며 수익을 내는 거고. 직업이 있어야 하잖아?”
하지만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도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을 후회했는데, 여자가 거절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손은 여자의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한번 빨아봐라.”
“참, 내가 왜.”
앙탈하던 여자가 그의 물건을 주물렀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씻고 올게.”라고 말하고 욕실로 들어갔고 다니 나오더니, 그의 배 위로 올라와 불끈 솟아오른 녀석을 따듯한 자신의 동굴로 서서히 밀어 넣었다.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그가 “술이나 마시러 가자.”라고 말했다. 여자가 “오징어회나 먹으러 갈까?”라고 물었다. 그가 “옆 테이블의 어쭙잖은 소리 듣기 싫으니 그냥 포장해 오자”라고 말했다. 여자의 전화기 벨소리가 울릴 때도 이때였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 그도 [부흥수산]에 전화를 걸어 “오징어 둘, 우럭 하나 포장해 놓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횟집을 다녀오려고 일어설 때였다. 여자가 “언니가 [시골보쌈]에 왔는데, 힘들다고 데리러 오래!”라고 말했다.
[시골보쌈] 식당 앞에 빨간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추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보쌈을 포장한 처형이었다. 처형이 말했다.
“아따, ㅇ이네하고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주네.”
사실 처형은 모임 시간을 잘못 알고 일찍 왔던 터였다. 처형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공원길을 돌아 횟집으로 향했다. 나이 든 가로수가 늘어진 방배 공원길을 돌아갈 때였다. 처형이 “여기 길이 이쁘네. 나는 이런 길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횟집에서 주인장은 “오늘은 오징어 가격이 내렸어요. 크기도 커요.”라고 말하며 카드를 받았다. 22,000원이던 오징어 값은 18,000원이었다.
주방 식탁에 회와 보쌈이 차려졌다. 근처 학원에 있던 딸도 자리를 차지했다. 딸이 회를 다 먹고 다시 학원으로 향하자 처형이 말을 꺼냈다.
“ㅇㅇ아빠가 워낙 생각이 있으니 내가 할 말은 없지만, 꼭 이혼해야 쓰겠어?”
처형은 정말 묻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꼭 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눈물을 쏟았다. 그러함에도 곧 웃음을 찾으며 “그래도 제사 때는 볼 수 있는 거지?”라고 되물었다.
“그럼요. 김 서방이 가야지요.”
그러자 여자가 “그게 뭐여?, 도장 찍으면 마음도 바뀐다고.”라고 참견했다. 처형이 “내가 보기에 둘이는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는 일이네.”라는 말을 남기고 여자가 운전하는 볼보 자동차를 타고 [시골보쌈]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여자와 술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