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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Sep 03. 2024

더는 만날 일이 없을 듯했다

[연재] 126. 이혼 102일 차 

126. 이혼 102일 차   

       


더는 만날 일이 없을 듯했다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오전에 맑음, 오후에 소나기      


  밀걸레로 빌딩 내부 계단을 닦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그리고 샤워하고 고시원 공동주방에서 밥을 한 공기 가지고 올라왔다. 육개장을 끓이고 달걀 하나를 투척했다. 아침 식사였다. 입주자에게 월세 입금 내용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고, 채무자 김 여인에게도 “연락 주세요!”라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채권자가 이러저러한 말을 하면 증거만 될 뿐이다. 그러자 문자가 왔는데 “죄송해요. 상중이에요. 채무는 갚아야지요.”라는 내용이었다. 지급명령을 하자니 그 짓도 피곤해서 좀 더 두고 볼 요량이다.      


  옷장을 열었다. 가로 1m도 안 되는 옷장이, 대한민국 경매계의 전설, 100억 자산가의 옷장이다. 호찌민이 봤으면 ‘친구’ 먹을 정도의 검소함이다. 그러다가 이내 그만두고 팬티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함을 열었다. 미국에서 주유소를 하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소설 원고를 보내왔다. ‘긴급 속보’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붕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내용으로, 박정희를 암살하기 위해 침투한 김신조 이야기 등도 있었다. 현 정부와 관련된다 싶어 출판사 씽크스마트 김태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메일 찍어 주세요. 소설 원고 하나 보내드리리다.”     


  김태영 대표는 그에게 ‘김 대표님 원고 주세요.’라고 앙망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지금 쓰려고 하는 소설이 완성되면 보내줄 생각이다. 그가 블로그에 연재한 ‘사냥꾼 이야기’ 도 파일로 옮겼더니 단행본 분량이 되었다. 하루하루 일기처럼 쓴 글을 모으니 바로 단행본이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따로 책을 내도 될 분량이기에 모아두었고, 일부 이야기는 구상하는 논픽션 소설의 도입부로 사용할 예정이다. 

     

  어젯밤 작성한 영상제 출품 시나리오를 몇몇 학우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콘티를 작성할 줄 안다는 문ㅇㅇ 학우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콘티 한 번 그려봐. 배역도 하나 줄게.”라고 꼬셨다. 여자로부터 메일이 도착할 때도 이때였다. 내용은 아이가 병실에서 팔에 링거를 꽂고 있는 사진 한 장이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작은 목소리로 “음, 병원이야. 너무 힘들어하기에 영양제 맞히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음식을 왕성하게 먹지 않는 딸이기에 늘 건강을 염려했다. 이마트에서 고기라도 사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러나 곧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고 여자가 우산을 챙겨 딸을 마중 나갔다. 그리고 메뉴는 치킨으로 낙찰되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치킨집으로 가서 후라이드와 양념을 각각 한 마리씩 시켰다. 그는 이 집 치킨을 최고로 친다. 치킨은 남았다.      


  딸은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학원으로 갔다. 여자가 스마트폰으로 여성 질 수술에 대한 광고를 보며 “입구부터 질을 좁게 만드는 거네? 나는 어때”라고 물었다. 여자도 몇 년 전 이쁜이 수술이라는 것을 했다. 하지만 질 입구를 너무 꿰매서 성관계할 때 고통을 호소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입구만 좁게 했어.”     


  여자의 질은 입구만 좁고 안은 넓은 항아리형이다. 이런 질은 처음 삽입할 때만 좋고 내부는 허당이다. ‘미인 중에 명기 없다’라는 옛말을 몸으로 입증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명기는 남자가 가만히 있어도 질 안에 괴물이 있는 것처럼 질 근육이 요동을 친다. 사정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버텨도 소용없다.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남자의 물건을 쓸어버리는 데에는 당해낼 수 없는 경험이 있다. 


  그런 여자가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씻지 않았어.”     


  아랫배는 차가웠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여자를 어찌할 수 없고, 또 어찌할 생각도 없기에 그대로 잠을 청했다.     


  “카톡!”

  “카톡!”

  “카톡!”

  “부르르르~~”     


  여자의 스마트폰은 알림음과 진동으로 분주했다. 여자가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빛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 마치 어장관리 하는 술집 여자와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났다.     


  “나, 간다.”

  “엄마 팔순이어서 7월에 부부 동반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우린 이혼했잖아, 난 못 가!”     


   그 길로 집을 나섰다. 소나기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는지 조용했다. 스포츠카의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도시의 밤바람을 느끼며 빌딩에 도착했다. 지하 홀로 내려가 노래방기기를 켜고 나훈아의 노래를 몇 곡 불러젖혔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여자와도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듯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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