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라이프
5. 타짜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맑음
경매로 낙찰받은 인천 토지를 ‘17억 원에 인수하겠다’라는 사내가 피렌체 빌딩으로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몸 좀 쓰는 다부진 체구에, 눈빛은 부리부리했다. 세상을 짐승처럼, 거칠게 굴러먹으며 살아온 이력이 얼굴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엑셀 프로그램을 열고 낙찰대금에서 배당받을 금액을 계산했다. 계획대로라면 5억6천만 원쯤 회수되어야 하는데 겨우 원금 3억5천만 원 정도 회수될 수준이었다. 게다가 17억 원에 매각한다고 해도 취득세 7천8백만 원이 추가로 들어가므로, 2천만 원의 손실이 더 생기는 구조였다. 그래서 매수 의사를 밝힌 사내에게 말했다.
“손실이 더 나므로 취득세는 그쪽에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이에, 사내가 곧바로 “난 그런 거 모르오. 17억에 하기로 했단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앉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17억에 낙찰받아 가시오. 우리도 쓸데없이 취득세를 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게 서로 이익입니다.”
사내가 멈춰 서며 “그게 뭔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자, 들어보세요. 낙찰자인 내가 매각 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입찰할 때 냈던 보증금은 몰수되고 법원은 ‘재경매’를 실시합니다. 그때 당신이 17억 원에 낙찰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그 이하로 낙찰받아 버리면 나는 손해를 보게 되니, 그걸 방지하려면 나에게 입찰 보증금(최저매각가의 20%) 2억5천만 원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내가 대리입찰을 해서 17억에 낙찰시켜드리겠습니다.”
물론, 사내는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꼭 낙찰받아야 합니다. 안 되면 골치 아파져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나는 안심시키며 “걱정 마시오. 재매각 사건이고 보증금도 크니, 다른 누가 그 금액 이상을 쓸 리 없습니다. 내일까지 보증금 2억5천만 원을 가져오시오.”라고 말했다.
인천 토지는 기존 채무자와 주변 쓰레기들이 넝쿨처럼 엉켜 있었다. 백 회장이라는 자도 건설업자를 통해 토지를 되찾으려 사람을 보냈다. 그 사내 역시 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낙찰 잔금 대출도 알아봐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이 말은 언젠가 먼 훗날의 숙제가 될 터였다.
이때였다. 사내가 “채권자 살살 꼬드겨 돈을 담그게 한 것도 알아요.”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채권자는 나였고, 꼬드긴 자는 충식이었다. 사실 이 물건은 3억 원만 대출했어야 했다. 충식이 수수료 욕심으로 채권액을 부풀린 것이 더 큰 손실로 이어졌다. 충식과의 결별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와의 담판은 극심한 정신적 피로를 남겼다.
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맑음
두려움.
눈을 감는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내게는 인천 토지 낙찰 잔금을 마련하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대한저축은행은 ‘유치권 포기각서’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실체가 불분명한 유치권자인 영오는 나를 찾아와 “제가 매수하겠습니다.”라며 시간을 끌고 있다.
함평에서 상경하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영오에게 전화를 걸어 “납니다. 내일이 계약 날짜인데, 잘 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물론, 전화하기까지 수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두려움과 맞서자.
영오는 “아직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유치권 포기각서도 받아야 하니, 오늘 만나죠.”라고 물었더니 “그럼 일곱 시에 인덕원역 4번 출구로 오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영오의 여자는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홀로 들어서자, 영오는 처음 만났을 때의 건달스러운 기세는 사라지고 부드러운 태도로 마중 나왔다. 이미 패를 읽은 듯한 표정으로 “저도 하나 받아야 할 게 있습니다. 매매에 관련된 서류를 받아야겠어요. 변호사가 작성한 서류라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오가 내민 서류의 문구는 유치권 금액을 인정하는 표현이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합의서를 새로 만듭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영오가 내민 서류를 찢고 몽블랑 마이스터튁 145 만년필을 꺼내 A4용지 위에 자필로 합의서를 썼다. 그리고 복사해 각자 한 부씩 가졌다. 영오가 나에게 ‘유치권 포기각서’를 건넬 때도 이때였다. 이렇게 두 사람은 “2014년 12월 30일까지 토지를 매매한다”라는 약속을 문서로 남기고, 불이행 시 배상 규정까지 포함한 합의를 끝냈다. 영호가 “보쌈이나 드시러 가시죠.”라고 권했다.
그의 안내로 들어간 식당의 식탁에는 금세 음식이 차려졌다. 영오가 “형수가 하는 식당입니다. 믿을 만하니 식구도 소개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호박마차는 남태령을 넘어 방배동으로 향하며 충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해치우니 아주 시원합니다.”
이에, 충식이 “오늘 잘하셨습니다.”라고 답했지만, 낮에 잠깐 충식 얼굴을 본 어머니는 “그 사람, 인상이 아니더라. 같이 다니지 마라.”라고 조언했다.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맑음
인천 토지 낙찰대금 납부를 진행하던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은 본사와 화상회의 중이었다. 본사 전무가 “낙찰자가 근저당권자인데, 건축허가서를 인수할 수 있는 거 아냐? 그 서류가 필요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에, 조 과장은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님, 건축허가서 양도서류 가능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일갈했다.
“조 과장, 조 과장이 채무자라면, 낙찰자가 잔금 내기도 전에 건축 허가서 양도해달라 하면 해주겠어? 그쪽에서 뭔가 약점이 있다고 생각할 것 아니야? 그러니 나는 그런 부탁 못 해! 도대체 니네, 은행은 왜 그러는 거냐? 사채보다 더하구나? 그리고 20일에 매각대금 못 내면 상계 처리 안 된다는 경매계장 전화도 있었어. 확인해봐도 돼! 너희가 매각대금 처리 못 하면 내가 대한저축은행하고 소송갑니다. 씨벌놈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잊고 있던 대한저축은행의 만행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동반자는커녕, 사채보다 더한 담보를 요구해온 곳이었다. 조 과장과의 인연 때문에 이번 잔금도 그 은행을 택한 것이 실수였다.
‘유치권 포기각서’를 가져다주었는데도, “유치권자가 개인이니, 한라건설 유치권 포기각서도 필요하다”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영오가 가지고 있던 (주)한라건설의 포기각서 사본을 즉시 팩스로 보내 해결되었다.
하지만 남은 문제는 ‘건축주 명의 변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특히 채무자 염상섭과의 사이는 어긋난 상태였다. 하지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배당받을 금액이 4억4천입니다. 그런데 3억 정도밖에 회수가 안 되네요? 그건 앞으로 회수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건축주 명의 변경 의향서 정도는 써줄 수 있습니까?”
미회수 채권을 두고 있는 채무자에게 부탁하는 정중한 요구였다. 그러나 염상섭에게 염치라는 게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염상섭은 그간 하던 대로 뺀질거리며 핑계를 댔다. 아니, 한술 더 떠, 경매계에 ‘매각 불허가 신청서’까지 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조 과장에게 말했다.
“봐라. 안 해준다고 하잖아?”
이에, 조 과장이 “사장님, 잠실 피렌체 빌딩을 공동담보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줄 때는 홀라당 벗고 준다’라는 속담이 스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치욕을 잊지 말자. 또한, 내 능력 밖의 문제에는 연연하지 말자. 그래서 대답했다.
“그래라!”
나는 조건을 수락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십 통의 전화가 오갔다.
https://youtu.be/L-0DxncG9Hw?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