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642,000,000원 낙찰 잔금 납부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6. 1,642,000,000원 낙찰 잔금 납부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맑음


아침 10시였다.

유치권자라고 주장하는 영오를 인덕원역 커피숍에서 만났다. 목적은 ‘(주)한라건설’이라는 건설회사의 ‘유치권 포기각서’ 원본을 받기 위함이었다. 마주 앉아, 다시 작성한 ‘토지매매 합의서’를 건네자 영오가 말했다.

“염(상섭)이 고소장을 들고 다녀요. 내가 봤다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김 사장을 땅을 뺏어간 나쁜 놈으로 본 거예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걔네들이 나쁜 놈들이네. 김 사장을 고소하면 와서 빌 거라고 얼마나 그랬는데요.”


영오의 말이 사실이라면 채무자 염상섭 일당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는 채권자의 권리로 그들을 끝까지 쫓아다니며 채권 회수를 해야 할 일만 남아 있었다. 다만, 어쩌면 한 번쯤은 경찰서에 출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대한저축은행은 유치권자 영오의 ‘유치권 포기각서’에 이어, 관계도 없는 (주)한라건설의 유치권 포기각서까지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한라건설 법인인감이 들어와야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지점장에게 항의했다.


“이거, 하등 법적으로 필요 없는 서류를 너무 요구합니다.”

지점장은 어깨를 좁히며 “본사 방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다시 영오에게 전화했다. 영오가 “비슷한 서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기에 “그러면 은행으로 팩스 넣어주세요.”라고 말하고 문자로 팩스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숱한 오욕을 견디며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빌리고 있었다. 대출금액은 11억5천만 원이었다. 대출 서류에 서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또 있었다. 안양 피렌체하우스 준공 후 빌린 대출금 12억2천만 원의 이자가 연 8%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 한가운데로 들어와 와 있었다. 게다가 이번 낙찰 잔금대출 담보는 낙찰받은 토지뿐만 아니라, 잠실 피렌체 빌딩까지 추가 담보로 제공해야 했다.

대출이 승인되자 긴장이 풀렸고, 피로도 몰려왔다. 대한저축은행에서 서울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내일 잔금과 동시에 배당’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떠올렸다. 적어도 경매 집행비용은 돌려받을 수 있을 터였다.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맑음


많은 고민을 안고 잠들었지만,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늦게 보일러를 돌렸더니 어깨가 시렸다. 자신에게 물었다.


‘뭔 궁상인가.’


몸을 일으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샤워하려 욕실로 들어갈 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이었다. “사장님, 매각대금에서 150만 원 정도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노트북을 켜 계좌에서 송금을 마치고, 사냥용 엽총을 찾으러 방배동 경찰서로 갈 채비를 했다. 법무사 사무실 김 실장이 전화를 걸어올 때도 이때였다. “배당에 필요해서 인감 2통, 등·초본도 한 통씩 떼어 오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꿩사냥은 미뤄졌다. 호박마차 핸들을 방배동사무소 방향으로 돌렸다. 창구에는 쌍꺼풀 수술 한 중년 공무원이 앉아있었다. 내가 필요한 서류 목록을 빠르게 말하자 “일단 앞에 말씀하신 인감부터 뗄게요.”라고 말했다.

서류를 받아 챙기고 인천지방법원으로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은 우면산 터널을 지나 안양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법원으로 가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채무자가 억지로 배당이의를 걸고 늘어지지는 않을까.’


낙찰 잔금을 맞추는 일도 벅찼기에,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그 와중에 영오가 전화했다. 자신이 ‘한라건설’과 맺었다는 유치권 인수·인계 계약서를 찾아 대한저축은행에 팩스로 넣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들이 하는 짓은, 경매방해 및 사해행위에 가까운 위법한 짓거리였다.


긴장 속에 배당 시간이 다가왔다. 배당은 경매법정이 아닌 326호 중법정에서 진행됐다. 경매계장이 곧바로 내 앞으로 와 “채권 원인 서류를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준비해간 서류를 건넸고, 배당도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내가 배당금으로 받은 건 이자 5,750원뿐이었다. 경매 비용까지 모두 상계신청으로 처리되어 배당에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치권자라고 주장하는 영오가 전화를 걸어와 “언제 올 거여? 눈 빠지겄네.”라고 엄살을 피웠다.


인천 낙찰받은 토지로 와서 ‘뭘 좀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각대금을 납부한 순간, 토지 소유자가 되었기에, 그다지 바쁠 이유가 없었다.


“기다려. 인천 구청도 들러야 해.”


그렇게 말하고 인천 구청 건축과로 향했다. 건축과는 본관 4층에 있었다. 눈이 마주친 젊은 공무원에게 “건축주 명의 변경은 어느 분이 담당하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어느 동이세요?”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당자는 외근을 나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다시, 공무원이 “서류 한번 주시죠. 제가 받아 놓고 담당자에게 전달해서 연락드리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서류를 건네자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건축주) 명의 변경 동의서는 받기 힘드시죠?”라고 물었다.


“그렇죠. 채무자가 그런 걸 해줄 리가 없지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명의 변경 신청을 위해 꼼꼼하게 준비해간 ‘매각대금 완납 증명서’ 등을 내려두고 건축과를 나왔다.


호박마차는 낙찰받은 토지 방향으로 향했다. 도로변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영오가 내려 걸어오더니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이걸 해줘야 내가 공사를 할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시공, 시행 등 모든 권한을 김영오에게 위임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건 내가 김 사장에게 모든 공사를 하라고 위임하는 내용이잖아? 이건 아니지. 어떤 건설회사를, 어떻게 쓸지, 그림이 먼저 나와야지? 그리고 땅을 당신에게 매매하기로 했는데 이런 걸 써줄 필요가 없지!”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재킷에서 몽블랑 마이스터튁 145 만년필을 꺼냈다. 그리고 “김영오로 하여금 현장의 보존·관리 등의 행위를 위임한다”라고 적어 내려가자, 영오가 종이를 빼앗듯 가져가며 말했다.


“에이, 안 써주려면 그냥 놔두세요. 그냥 공사하면 되지.”

“내 말이,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내가 현장에 자주 올게!”


토지는 이제 내 것이었고, 토지주로서 쓰레기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 할 터였다. 영오가 나에게 ‘한라건설’과 공사 계약했다는 서류를 건넸다. 작성일은 그해 9월 1일. 나는 이 가짜 서류를 어떻게 써먹을까 잠시 생각했다.


김영오는 공사할 생각도, 능력도 없으면서 허접한 서류로 유치권 장사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명분으로 서류를 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서명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 나와 체결한 토지 매매계약 대금도 약속한 날짜에 가져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돈이 없는 놈이었다.


밥을 지었다. 청어와 명란젓을 뜨거운 밥 위에 올려 먹고 싶었다. 김치에 굴을 싸서 먹고도 싶었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세탁기가 돌아갔다. 낙찰 잔금 납부와 소유권이전등기를 맡은 법무사 김 실장의 전화를 받은 때도 이때였다.


“경매계에서 채권 서류 원본이 아닌 사본이 제출됐다고 하네요?”


당일, 분명 근저당채권 원본을 제출했기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근저당채권 서류, 거기에 있어?”라고 물었더니 “저한테는 사진을 주셨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경매계에 분명 원본을 냈다. 그때 김 실장이 “원본에 배당금으로 얼마 회수했는지 부기해야 하고, 나머지 미회수 채권은 추심 안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었다.


“당연히 추심해야죠. 그래서 근저당설정 서류를 복사해 놨는데?”

“복사본은 안 됩니다. 원본에 부기문 확인받으셔야 해요. 복사본으로 하려면 경찰서 가서 확인서 받고, 절차가 복잡합니다.”


결국 법원에 가서 근저당채권 원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법원에 다녀오지.”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맑음


아침,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인천지방법원 민사집행과 경매18계였다.

경매계장에게 “채권자입니다. 채권 원본 서류가 없다고 해서 일찍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경매계장이 서류철을 뒤적이며 “네, 이거 하나밖에 내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했다.


경매계장이 내민 서류는 1순위 채권자 농협의 근저당권 서류였다. 그래서 내가 “이건 농협 근저당권인데요? 제가 낼 서류는 아니잖아요.”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내신 게 이거라니까요. 제가 먼저 받았잖아요.”라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맞아요, 배당 전에 서류를 제가 받긴 했죠. 그런데 당시 농협은 출석도 안 했어요. 그러니 이 서류가 여기 있을 이유도 없고, 내가 이걸 제출할 권한도 없다니까요.”


그래도 경매계장은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답답해하며 “아니, 법무사 여직원도 옆에 있었고요. 제가 낸 서류는 이겁니다.”라고 말하며, 사진으로 찍어둔 근저당권 원본을 보여주었다. 경매계장도 더는 우기지 못하고 “그렇다면 당시 배당 사건 서류에 잘못 끼어들어 갔을 겁니다. 같이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며 사건 서류 20여 건을 꺼내 놓고 “이쪽으로 오셔서 한번 확인해 보시죠.”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류를 나누어 들고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두 건 정도 확인했을 때, 경매계장이 “여기 있네요.”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다른 사건 서류에 끼어있었다. 계장은 미안한 표정으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어차피 남은 채권 추심을 위해 원본이 필요해서 온 거니까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고, 계장은 근저당설정 원본에 ‘부기문’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렇게 돌려받은 근저당권 원본은, 채무자이자 전 소유자였던 염상섭을 상대로 미회수 채권을 추심 할 때 끝까지 따라붙을 무기가 될 것이었다.



https://youtu.be/BpCitgyGp_Q?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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