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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10. 2024

아내가 불륜 행위 하는 여관을 덮쳐

[연재] 97. 이혼 73일 차

97. 이혼 73일 차          



아내가 불륜 행위 하는 여관을 덮쳐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흐림      


  여자와 다툼이 있으면 ‘막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로 두 번째였다. 눈을 뜨려고 했으나 피로한 탓에 쉬이 떠지지 않았다. 안약을 찾으려고 일어나니 침대 협탁에는 칵테일 잔이 그대로 있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여자에 대한 분노가 음주로 인해 폭발하는 것이기에 여자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그러므로 헤어진 여자를 찾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사촌의 이혼 소장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불륜 행위 하는 여관까지 덮쳤음에도 ‘용서하고 산다’라는 것은, 성욕에 의한 합의에 불과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용서에 대한 대가로 매일 섹스를 요구했다. 그리고 원고인 부인은 이혼 소장에는 피고인 남편을 “성 도착 증세”라고 적었다. 아마 그도 이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사실 그가 집을 나온 것도, 아내와 다투다가 험한 꼴을 입힐까 염려해서였다. 그걸 잠시 잊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 그도 역시 망각의 동물인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했다.    


 

  샤워하고 출근하는 기분으로 하얀 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런 후 [전주식당]으로 가서 선지해장국으로 속을 풀었다. [무빙 디자인] 한 소장이 도배업자들을 이끌고 와 비가 새서 젖은 401호와 403호, 그리고 고시원 일부 호실을 작업했다.           



  채무자 박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일 좀 만들어 보려고 등기부등본을 떼어 봤더니 경매기입등기가 되어 있네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라고 물었다. “아는 그대로야. 박 사장이 정리 못하니 내가 (부동산 경매 절차로) 정리해 주려는 것이지. 언제든지 풀 수 있으면 협조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곧 다시 전화를 걸어와 “담보제공자인 토지주가 사장님과 통화를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 사장, 나 사채업자 쟎어? 내용증명을 보내던지, 아니면 법원에 공탁금 걸고 소송을 하면 되는 거지. 뭘 전화하고 그래! 당신 살 궁리나 하라고. 뭔 말인지 알아?”라고 말꼬리를 올렸다. 그제야 “사장님 말씀이 뭔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라고 알아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은행 계좌로 대출이자를 입금했다. 세무서에서는 부가세 2,300만 원을 조기환급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세무사를 통해, 공사 계약서와 입금 내역 등을 요구해 왔다. 당연히 찍어놓은 사진을 압축해 메일로 보냈다. 공사 계약서나 부가세가 100% 투명하기에 속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안양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며칠 사이에 내부 벽체가 다 세워지고 전기, 수도 배관도 깔렸고 소방시설이 설치되고 있었다. 현장소장이 “어제 소방공무원이 와서 각방 소방 경보기와 감지기를 설치하라고 하네요. 이거 뭐, 전기쟁이를 불러야 하니 돈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최대한 싸게 할 텐데 알고는 계시라고요.”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공사비는 못 구하면 일단 공사를 중지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돈 벌어 내년에 해야지요.”라고 농담을 덧붙였다.     


      

  낯선 번호의 전화도 받았다. 중년의 남자로 추정되는 목소리로 “보트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여기는 거제도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젯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보트 매도 글을 올린 효과였다. 가격을 절충하며 거제도까지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문제도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200만 원에 주십시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어제 영프린스호에 탑승한 남자였다. 어제의 행동으로 보면 보트를 살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다.      


  “구명조끼도 8개, 스크루, 배터리, 젤리 캔도 드리니 좀 더 쓰시지요?”     


  그렇게 하여 *,250만 원에 매매하기로 합의했는데, 계약금은 “계약서를 쓸 때 드리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말했다.     

 

  “보트를 사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사겠다고 했다가 해약을 하면 전 매매를 할 기회를 잃거나, 판매되었다고 말했다가 다시 판매한다면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1백만 원 정도는 입금해 주세요.”

  “그렇다면 사장님을 믿고 입금하겠습니다.” 

    

  그렇게 통장에 계약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인터넷에서 보트매매 계약서와 자동차매매 계약서를 다운로드하였다. 그러니 보트 등록증과 트레일러 관련 서류를 준비해 매수자에게 건네주면 된다. 이로써 헌 것을 버리고 새것을 소유하겠다는 노력이 결실을 내고 있었다. 


  다시는 남이 쓰던 물건을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중고 렌즈를 방출했고, 중고 보트를 방출한다. 물론 중고 엽총도, 중고 랭글러도 방출할 것이고 빌딩도 그럴 것이다. 부동산도, 자동차도, 인연도 모두 방출하고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시작할 것이었다.           


   인생의 2막의 시작은 벤츠 SLK 로드스터와 트렁크를 가득 채운 현금, 캐논 5D mark3 카메라, 몽블랑 만년필, 롤렉스 시계, 베넬리 엽총과 보안성 좋은 도봉산 별장이었다. 그러므로 빌딩과 건축 중인 안양의 빌딩도 모두 매각 대상이며 소유하게 될 호텔 또한, 경영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었다. 랭글러 루비콘은 3천만 원 정도면 매도가 될 것 같았다.      



  이럴 때 유 양이 전화를 받는다. “가면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라고 물었다.     

 

  “재미? 글쎄. 그런 것을 모르니 지도편달을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제가 어떻게요? 7시까지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괜찮고 말고 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오늘은 벤츠 SLK 로드스터로 움직이고 있어서 감동적인 연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도 전력을 다하는 법, 재력을 떠나 ‘한번 엮어 보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때였다. 베드로가 “사장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국악 예능인과 데이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방은 안 됩니다. 허리 색이나 아니면 지갑만 챙기세요.”     


  베드로의 지적에 “좀, 일수쟁이스럽지요?”라고 동의하며 인터넷 옥션 사이트에 접속해 크로스백 하나를 지르는 사이 유 양이 도착했다.     


  “배가 많이 고플 텐데? 가까운 데서 먹을까? 아니면 좀 나가도 될까?”

  “오빠, 전 참을 수 있어요. 알아서 하세요.”

  “그럼 내 차를 뺄 테니 뒤에 주차해.”     


  유 양은 흥분했는지 뒤로 후진하는 차를 보지 못하고 부디 칠 뻔했다. 다행히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차체를 두들겨 알려주었다.      



  그들을 태운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는 팔당대교를 넘어 강변의 식당에서 멈추었다. ‘장어요리를 먹을까’하며 검색한 곳 중 한 곳이다. 메뉴는 낙지 해물찜이었다. 푸짐해서 두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오빠, 이 차 지붕이 열리는 거야?”

  “지붕이 열리지 않으면 현금 주고 샀겠어?”

  “완전 나 힐링된다. 사실 오늘 기분이 아주 우울했거든. 친구도 제주도 여행을 갔고.”     


  그러는 사이 벤츠 SLK 로드스터는 어느새 두물머리로 들어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두물머리에는 별을 찍으려는 사진사들이 시커먼 실루엣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네. 나는 뭐 하고 살았지?”라고 읊조리듯 말했는데, 두 사람은 어느새 손을 잡고 있었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그가 “손잡은 거, 아니다. 밤눈 어두워 넘어질까 도움 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나 포옹하고 싶은 욕망을 눌렀다.      


  유 양은 작고 가냘픈 몸이었다. 하지만 볼의 피부는 역시 연식을 말해줬다. 그들은 이미 상당히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유 양이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보여주면 어떡하려고 그래?”라고 놀렸다. 그가 “내일 못 만날지도 모르니까 다 보여주는 거야. 이게 다야. 재방송할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밤하늘과 별과 바람과 그들은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들은 다시 왔던 길을 달려 빌딩으로 왔다. 유 양이 “커피는 내가 살게.”라고 말했다. 그가 “올라가서 끓여 먹지?”라고 말해도 “아니야, 그건 아니다. 테이크 아웃 하자.”라고 말했기에, 커피 [그루나루]에서 모카커피와 허브차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지하실로 갈 거죠?”라고 물었고, 커피를 놓고 마주 앉았다.   

   

  “오빠, 조용필 닮았다는 소리 안 들었어? 많이 들었지?”

  “좀 들었지.”

  “난 누구 닮은 거 같아?”

  “뭔 수경인지 그런 분위기다.”

  “뭔 수경? 음, 말 안 할래.”     


  그러면서 “고 사장님이 오빠를 소개할 때, ‘그 친구도 나와 같은 과’라고 말해서 걱정했는데 만나보니 오빠는 아닌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에 그가 “고사장이 워낙 성적 농담을 잘해서 그럴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니야, 정말로 섹스를 좋아한데, 낮에 놀고 집에서 또 한다고 그러더라. 웃겨 죽는 줄 알았어. 그래서 오빠도 같은 과라고 그래서 암담했지. 그런데 아닌 것 같아. 다행이야.”라는, 칭찬인지 실망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또한, 대학교 ‘시간강사를 한다’ 라거나, 전국 대회에서 ‘말도 안 되게 대통령상을 빼앗겼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결정적인 한마디도 빼먹지 않았다.     


  “나 사실 아이가 있어. 일곱 살이야.”    

 

  이런. 노처녀 작업하나 싶었는데 돌싱이라니! 하긴 여자의 과거를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유 양이 “띠동갑의 남자와 강남의 웨딩 홀에서 화려하게 결혼식을 하고,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지. 그런데 그게, 다 사기였어. 아이도 시험관 아이를 낳았다니까? 그것도 문제가 있었나 봐.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혼해주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표정이 숨어 있었다.      


  그가 “피곤해서 어떻게 내려가냐?”라고 물었다. “어쩔 땐 졸음운전을 하기도 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빈방 있는데 자고 갈래? 근데 이불이 없다.”라고 말하자 “아냐, 나는 잠자리만은 지켜.”라고 말했다.   


   

  양수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의 취미인 사냥 이야기가 나왔다. 사냥터에 가면 “숙박을 위해 여관을 잡는데, 나는 깨끗한 그 침대가 좋더라.”라고 말했을 때였다. 유 양이 스치는 말로 “호텔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교수를 꿈꾸는 국악 예능인 다운 말이었다. 즉, 유 양은 첫날밤을 삼선교 여인숙이 아닌 호텔에서 엎어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여자였다.      


  ‘그래, 진정한 제비는 그래야 한다! 기꺼이 밤을 위해 투자하는 거다.’


  자정이 약간 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차장엔 두 대의 차량이 가로막고 있었다. 연락해 차를 빼도록 했다. 유 양이 가녀린 손을 내밀어 악수한 후 흰색 벤츠 승용차에 타더니 왼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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