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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04. 2024

바닷 속이 옷으로 가득했다

울트라 패스트패션 섬유 쓰레기, 개발도상국 아프리카 칸토만토 마켓 

MBC뉴스 손령특파원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아프리카 가나 수도인 아크라 시내입니다. 지금 제 뒤로는 의류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 옷들은 도대체 어디서 왜 왔는지 한번 취재해보겠습니다...


유튜브 채널에서 반가운 (반가워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가운) 모습이 나왔다. MBC '특파원이 간다'가 패스트패션 쓰레기의 실상을 보도한 내용이었다. 화면에는 거대한 쓰레기 옷더미가 쌓인 쓰레기 산에서 불과 1km 옆에 있는 세계 최대 중고 의류 시장, 칸타만토 마켓의 모습이 비춰졌다. 


백화점에서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 옷을 쇼핑백에 살포시 개켜 넣을 때,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집어들 때, 몇 번 입지도 않은 옷을 초록색 헌옷수거함에 넣을 때, 우리는 바닷 속에 버려져 물을 잔뜩 머금은, 우리 몸무게보다도 무거워진 옷가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패스트패션도 옛말이 됐다. 매주, 매일 옷을 만드는 울트라패스트패션이 등장했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은 아소스, 부후, 쉬인 등 신흥 SPA시장 기업을 일컫으며, 기존 패스트패션보다 더 빨리 옷을 출시하는 현상을 뜻한다. 중국 초저가 쇼핑몰 쉬인(Shein)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에 출시된 의류 패턴을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하는데, 2021년 하반기에만 최대 1만 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는 같은 기간 H&M과 자라가 내놓은 새 디자인을 합친 것보다 20배 많은 수준이다.


Google Search Volume For Selected Fast Fashion Companies 특정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구글 검색량 


쉽게 사고, 더 쉽게 버린다.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성장 중인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 덕분이다. 기업들은 우리에게 더 다양한 제품을, 더 빠르게, 더 싸게 제공한다. 당일배송, 무료반품, 특정 금액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나에게 딱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하고, 한 두 번 둘러본 적 있는 제품을 용케 알아내 살 때까지 광고를 띄운다. 


이 모든 '혁신' 덕분에 우리는 옷을 더 많이, 더 자주 사게 됐고 이렇게 버려진 옷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옷 중 5%만 국내에 남고, 95%는 해외로 '수출'된다. 수출은 지나치게 좋은 표현이다. '기부'라는 표현도 마찬가지. 결국 버리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임금으로 싸게 만들어온 옷들을, 선진국 사람들이 입고, 이를 또다시 개발도상국에 버린다. 쌓이고 쌓여 오갈 곳 없어진 옷들은 결국 모든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바다로 향한다. 


출처: MBC
출처: MBC

가나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의 모습이다. 강가에 버려진 옷들은 흘러 흘러 바다로 향했다. 파도에 휩쓸린 옷들은 어촌 마을 해안가를 어지러이 가득 메웠는데, 그 어마어마한 양과 규모는 마치 자연물을 보는 것만 같다. 지질에 새겨진 암석 '플라스틱 화석'은 이제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바닷가 언저리에만 옷이 있는 게 아니다. 바다 속도 옷들로 가득 차 있다. "해안가는 염료로 둔탁하게 물들었고 폴리에스테르, 사실상 플라스틱인 미세 섬유 조각들이 바닷물로 녹아 들어"갔다. 바다거북과 산호는 사라졌고 더 이상 고기도 잡히지 않는다. 


가까운 바다엔 고기가 없어요.
물고기를 잡으려면 먼바다까지 나가야만 합니다.

MBC와의 인터뷰에서, 오마니 꿔꾸이(어부)



패션 산업은 화려한 이면 아래, 전 세계 폐수의 20%, 온실가스의 10%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항공 및 해운 분야의 탄소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치다. 그러니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비행기 타기를 꺼려하면서도 저렴한 옷들을 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면, 우리의 '선행'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


카페에 가서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쓰겠다고 '용기내'고, 비닐 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던 나는, 멋지고 화려하기만 한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더 이상 '더 많은, 더 빠른, 더 저렴한' 제품이 필요하지 않다. 




MBC의 취재가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것은, '칸타만토' 혹은 '패스트패션'에 대한 정보가 2018년 한국무역신문, 2021년 KBS 2TV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2022년 뉴시스, 2023년 충북일보에 나온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분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데, 종사자가 3만 명이라는 등의 정보는 어째서 7년째 그대로일까. 그마저도 제대로된 취재 없이 같은 뉴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메라 앞에 서는 유일한 인터뷰이도 환경운동단체 The OR Foundation로, 2021년 오마이뉴스에서도, 2023년 CNN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패션 산업의 거대한 그림자 앞에, 목소리 내는 사람이 '항상' 환경운동단체'뿐'이어야 하는 걸까. (거의 틀린그림찾기 해야 하는 수준이다...) 


옷 하나에 5 세디 (5백 원가량)로 엄청 싸서 이렇게 걸레처럼 쓰고 버리기도 해요. 비가 많이 오면 다 바다로 가요.

심지어 이렇게 한글이 적혀 있는 수건들도 대규모로 수출이 됐는데 상인들은 도저히 쓸 수 없는 쓰레기 수준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더 비관적인 건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폴리에스테르 옷이 2배 늘었고, 인터넷 쇼핑 활성화 등으로 의류 판매량 역시 오는 2030년까지 지금보다 65%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개발도상국이 헌 옷을 수입하며 생기는 문제는 단언컨대 더욱 악화될 여지만 남았다. 패스트패션 물결이 일기 시작하며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패션 수요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까지 모든 사람이 옷에 6400루피(약 10만 원)를 쓸 것으로 추정하는데, 2018년에 3900루피(약 6만 2000원)를 썼던 것에 비하면 빠른 속도로 옷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매킨지 보고서는 향후 몇 년간 300여 곳의 국제 브랜드가 인도에 매장을 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도는 한때 미국과 유럽에 납품하는 옷을 만들거나 세계를 떠돌던 헌 옷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신세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패스트패션 판매와 소비의 또 다른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 쓰레기들은 이제 또 어디로 가고 또 어디로 버려질까.

                   

허무하다. 내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써 내겠다며 초기 리서치를 시작하던 때부터 출간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 분명 무언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 독자들과 이야기 나누며, 또 감사한 후기들을 보며, 정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또 하나둘 함께 하고 있구나, 체감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선언은 선언에 그칠 뿐인 걸까. 우리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언제쯤 큰 태풍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U의 패스트패션 생산자책임제도 확대만이 반가운 소식인 가운데, 국내 도입까지 손가락이라도 빨며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걸까. 뭘 어떻게 해야 이 지독한 소비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 답답하다. 답답한 만큼... 더 공부하고 더 목소리 내야겠다. 더 크게, 더 자주. 뭐라도 하자!

 

https://youtu.be/3oZlJAjPQ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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