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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y 13. 2024

5월에 비

곡우


" 지수야. 아빠가 저녁에 뭐 해줄까 ? "

" 김치볶아 주세요!  "


이어폰을 빼고 냉큼 달려와 냉장고 문을 열더니 김치통을 꺼내 씽크대위에 놓는다.


맨날 볶은 김치만 먹냐며 눈총을 주지만 딱히 자신있게 만들어 줄 만한 음식도 없어 반사적으로 후라이판을 꺼내 들었다.


후라이판에 식용유를 두루고 김치를 잘게 썰어 올려놓고 가스렌지에 불을 켰다.


특별한 먹거리라도 만들어줘 볼까 몇번을 냉장고를 뒤적거려 봤지만 쓸데없이 멀쩡한 음식재료만 버리게 될 거 같아 그때마다 포기하곤 했었다.  


한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있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솜씨도 없는 아빠가 주방과 냉장고 사이에서 안절부절 허둥대자 아빠옆에 바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린다.


맛을 내주는 양념을 보태지도 않고 특별한 가공도 없이 손쉽게 김치볶음을 해줘도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한편 고마웠다.


지수는 후라이판을 들어 볶은 김치를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밥이 담긴 커다란 대접에다 쏟아붓고선 흥얼거리며 신나게 먹는다.


나도 초간단 레시피로 두부찌개를 끓여 냉장고에서 1주나 묵은 반찬 두어개를 곁들여 대충 저녁식사를 끝냈다.


저녁밥 차리기에 지쳐 설겆이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우산을 꺼내들고 아파트담장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개비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가 내리는 빗물의 무게에 눌려 멀리 퍼지질 않았다. 봄비라 부르기에 빗줄기가 보기보다 굵슬리퍼만 신은 맨발을 금새 적셨다.


회색빛 구름보다 짙은 담배연기를 연거퍼 숨을 참아가며 들여 마셨다가 길게 내뿜는데 눈앞이 아득하고 머리도 핑돈다.


한껏 들이마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올려다 본 하늘엔 비를 흠뻑 머금은 희뿌연 구름뿐. 오늘 밤안으론 비가 쉬이 그칠 거 같지가 않아 어쩐지 심란하다.


지난 5월 5일에도 비가 많이 내렸었다.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고 난 뒤 비가 내려주면 빗물이 땅속으로 촉촉히 스며 들어서 뿌리를 뻗어 나가고 줄기가 자라나 잎이 나고 열매가 열리는 게 세상의 이치.


5월 5일은 곡우. 이날부터 보름 사이에 비가 내려야 그 해 풍년이 들고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는데 때맞춰 비가 내리고 있으니 자연의 섭리도 아직은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어느 5월 5일 날의 기억.

그 날도 곡우였다.


내일도 그날처럼 단비가 내려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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