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웹소설이 일상이 되었고,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회귀, 빙의, 사이다, 성장물 같은 장르가 대세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엔 가상현실 게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 유행했다. 특히 RPG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어떨까?”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메이플스토리’가 현실이 되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땐 단순히 게임이 현실이 되면 재미있겠다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다르다. 현실이 게임처럼 모든 능력이 수치로 보였으면 좋겠다.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체력, 지능, 감성, 인간관계, 스트레스까지. 나의 상태를 수치로 정리해서 눈에 보이면, 삶이 조금 더 단순해지지 않을까.
RPG에는 각 캐릭터가 찍는 특화 스텟이 있다. 전사는 힘, 도적은 민첩, 마법사는 지능. 그렇다면 나는 어떤 스텟을 찍어 살아왔을까. 아마 체력은 낮고, 지능이나 감수성 같은 항목에 무의식적으로 포인트를 쏟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체력이 딸리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고 감정과 생각은 늘 앞서간다.
사람도 게임 캐릭터처럼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강화할 부분을 찾아내 보완하는 것.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너무 방황했고, 무슨 캐릭터인지도 모른 채 그냥 퀘스트만 따라가며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스킬도 부족하고, 아이템도 안 맞는… 망캐릭터 같기도 하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앞으로 스텟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고, 다시 특화된 캐릭터로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막막하다. 나는 지금도 내 미래가 뭔지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사라지면 좋겠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하면서. 이 게임 같은 인생에서 나는 어떤 스텟을 찍으면,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