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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너드 EngNerd Sep 30. 2021

와인을 따를 때 무조건 한 방울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

찻주전자 효과 및 수력-모세관 효과

by 엔너드 EngNerd

#와인 #물 #주전자 #찻주전자효과 #드리블링 #모세관 #수력모세관효과 #공학 #과학 #기술 #과학기술






와인병으로 와인을 와인잔에 따르고 병을 꺾을 때 꼭 한두 방울이 주둥이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이 현상을 드리블링(dribbling)이라고 하는데요. 물을 따를 때 이상하게 꼭 원하는 대로 물이 안 가고 컵을 따라 흐르는 경우 또한 드리블링 현상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물이나 소주를 콸콸 따를 때 말고, 오히려 컵이나 병을 세우려고 할 때 드리블링 현상이 발생하죠.

와인을 따르다가 멈추려고 하면(왼쪽), 와인이 와인병 주둥이를 따라 흐르다가(가운데) 한두방울 남게 된다(오른쪽).


아마 대부분은 와인을 깔끔하게 따르려면 빠르게 따른 뒤 병을 휙 세우면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득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안 생기게 할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면 더욱 좋겠죠? 와인을 마실 때마다 와인병에 꼭 한두 방울씩 와인이 묻어서 고민이었던 제가 그 이유와 해결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 이 작가는 더러운걸 못 참아서 와인병에 뭍은 와인은 바로 닦는다. 사실상 이 콘텐츠는 본인이 답답해서 공부하고 만든 것이다.






찻주전자 효과, Teapot effect


찻주전자로 물을 따를 때 물의 유량이 감소할수록 물줄기가 점차 주전자에 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Kistler & Scriven (1994)]

와인이 와인병을 따라 흐르는 드리블링 현상은 1956년 레이너(M. Reiner)찻주전자 효과(Teapot effect)라고 부르며 처음 연구되었습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찻주전자로 물을 따를 때 물의 유량이 감소하면서 물이 점차 주전자 쪽으로 붙어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죠.


찻주전자 효과에 왜 발생하는지는 2010년 프랑스 리옹 대학의 두에즈(C. Duez) 외 연구진이 실험 및 이론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찻주전자 효과는 수력-모세관 효과(hydro-capillary effect) 또는 관성-모세관 메커니즘(inertial-capillary mechanism) 때문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곡률이 있는 고체 위로 물이 흐를 때의 이미지. [Duez et al. (2010)]


먼저 와인병의 주둥이와 같이 곡률이 있는 고체 표면 위를 액체가 흐를 때 액체 위아래로 압력 차이가 발생합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압력을 받은 액체는 고체 방향으로 힘을 받아 고체 표면 가까이서 흐르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코안다 효과*(Coanda effect)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엔 고체와 액체가 상호작용을 하는데, 고체-액체 간 젖음성이 클 경우 액체가 고체 표면에 붙어서 모세관 메니스커스**(capillary meniscus)를 형성합니다. 액체의 흐름이 있을 때 액체가 그 기존의 흐름보다 더 고체에 달라붙어서 흐른다는 뜻입니다. 만일 메니스커스로 액체가 더 많이 유입이 된다면 와인병 아래로 와인이 막(film)처럼 병에 붙은 채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와인병을 세우게 되면 와인병에 붙어있던 와인 일부가 떨어지지 못하고 한두 방울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 코안다 효과는 유체가 곡면을 따라 흐르려는 것을 말한다. 다이슨의 에어랩 스타일러는 코안다 효과를 응용한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이다.

** 메니스커스는 액체 표면이 표면장력에 의해 곡면을 형성한 모습을 한다.






찻주전자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유체 속도, 젖음성, 곡률반경 및 점성에 따른 유체 방출각 변화. [Duez et al. (2010)]

두에즈 외 연구진은 찻주전자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유체의 관성(inertia of the fluid), 주둥이의 곡률(curvature of the spout), 젖음성(wettability)이라고 밝혔습니다. 의외로 유체의 점성(viscosity)과 중력(gravity)은 찻주전자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 그림에서는 두에즈 외 연구진이 실험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y축 값(유체 방출각)이 0에 가까울수록 찻주전자 효과가 커집니다. 따라서 와인을 느리게 따를수록, 주둥이가 뭉툭할수록 그리고 친수성일수록 찻주전자 효과가 강해집니다.   

찻주전자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소: 와인의 속도(왼쪽), 주둥이의 곡률(가운데), 와인병의 젖음성(오른쪽). 원 안의 그림은 와인병 주둥이의 단면을 나타낸 것이다.


그럼 우리가 와인을 따를 때는 어떤 상황일까요? 와인을 따를 때 와인의 속도는 약 0.6-1 m/s 정도, 와인병(유리)은 친수성 재질이며 주둥이의 곡률 반경이 약 1.5 mm 입니다. 이를 위 실험 결과에 대입해보면 와인을 따르다가 찻주전자 효과가 충분히 발생하기 좋은 조건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와인을 깔끔하게 따를 수 없는 것이죠.






찻주전자 효과를 억제하는 방법


그렇다면 와인을 따를 때 와인을 흘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찻주전자 효과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의 반대로 적용하면 되겠죠. 즉, 와인을 빠르게 따를수록, 주둥이가 뾰족할수록, 그리고 주둥이가 소수성일수록 좋습니다.


여기서 주둥이를 최대한 얇게 만들면 주둥이가 뾰족 해질 테니 유리하겠죠. 와인이 주둥이 바깥면으로 흐르기 어려울 겁니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와인 푸어러(wine pourer) 또는 와인 드랍 스타퍼(wine drop stopper) 등의 제품들입니다.


또한, 주둥이 끝이 뾰족하지 않더라도 주둥이 바깥면이 뾰족하면 액체가 더 이상 표면을 따라 흐르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방 세제를 담은 용기를 보면 주둥이 옆이 뾰족한 걸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찻주전자 효과를 없애는데 도움을 줍니다.

주방 세제 용기의 주둥이를 타고 흐르는 세제. [Kistler & Scriven (1994)]


주둥이를 소수성을 넘어 초소수성(superhydrophobic)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초소수성 표면은 물을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에 젖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래 그림과 같이 물이 주둥이 표면에 전혀 달라붙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소수성 재질로 된 찻주전자로 물을 따를 때(왼쪽)와 친수성 재질로 된 찻주전자로 물을 따를 때(오른쪽). [Duez et al. (2010)]






지금까지 찻주전자 효과와 그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수력-모세관 현상을 거스르고 와인병으로 와인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따를 수 있을까요? 저는 와인을 마신 적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성공해본 적이 없습니다. 와인병을 비틀면서 올려도 잘 안되고요. 결국 매번 키친타월로 와인병을 닦은 기억밖에 없는데요. 여러분들도 와인 마실 때 찻주전자 효과를 기억하면서 한번 시도해보세요. - EngNerd



Copyright EngNerd. All rights reserved.



P.S. 해당 글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빨간 돌' 연구원*의 소재 제공 및 검토를 받았습니다. 이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해당 글은 경희대학교 기계공학부 이충엽 교수님**의 자문 및 검토를 받았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직접 대면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빨간 돌은 유체역학 전공 박사과정생으로서 cavitation bubble을 연구 중입니다. 건담과 보드게임을 좋아합니다.

** 이충엽 교수님은 유체역학을 전공하셨으며, Liquids@interfaces 그룹에서 droplet impact 등의 연구를 수행 중이십니다.




참고자료

Jennifer Ouellette | ars technica (2019); 

https://arstechnica.com/science/2019/05/dribble-no-more-physics-can-help-combat-that-pesky-teapot-effect/

- Reiner, M. (1956). The teapot effect. Phys. Today, 9(9), 16.

- Kistler, S. F., & Scriven, L. E. (1994). The teapot effect: sheet-forming flows with deflection, wetting and hysteresis. Journal of Fluid Mechanics, 263, 19-62.

- Duez, C., Ybert, C., Clanet, C., & Bocquet, L. (2010). Wetting controls separation of inertial flows from solid surfaces. Physical review letters, 104(8), 084503.



콘텐츠 기획에 참고한 자료

- Keller, J. B. (1957). Teapot effect. Journal of Applied Physics, 28(8), 859-864.

- Vanden‐Broeck, J. M., & Keller, J. B. (1989). Pouring flows with separation. Physics of Fluids A: Fluid Dynamics, 1(1), 156-158.

- Jambon-Puillet, E., Bouwhuis, W., Snoeijer, J. H., & Bonn, D. (2019). Liquid helix: how capillary jets adhere to vertical cylinders. Physical review letters, 122(18), 184501.

- 홍석인, 찻주전자 효과 | 물리학과 첨단기술 (2014)

- The Death of the Teapot Effect | Technology Review; https://www.technologyreview.com/2009/10/22/208680/the-death-of-the-teapot-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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