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너드 EngNerd Feb 03. 2023

공학 박사가 된 소감

S대 박사 학위를 받고

2023년, S대 공학 박사는 제 최종 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2009년에 S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진학하고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방황기를 보냈습니다. 인싸들이 소개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싸는 2011년 육군으로 입대한 뒤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속에 피어나는 번뇌를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해탈한 전역자는 복학 후 본격적으로 공학을 탐구하기 시작하는데, 2년 동안 머릿 속을 비운 탓에 흔히 말하는 4대 역학*을 완전히 까먹어 고생길을 걷게 됩니다.


* 4대 역학: 고체역학, 동역학, 열역학, 유체역학을 뜻하며 S대의 경우 모든 학부생이 2학년부터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유체역학에 흥미를 가졌던 순수한 군필자는 ‘유체 = 항공’ 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항공과 전공과목을 수강하며 비행기, 로켓, 인공위성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4학년을 마칠 때쯤 ‘내가 하려던게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고, 결국 1년을 더 다니기로 결정하고 기계과로 눈을 돌렸습니다. 2015년, 기계과 유체역학 강의를 듣다가 ‘바로 여기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약 8개월의 연구실 인턴 생활 후 그대로 쭉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유명한 대학원생 짤.

흔히 대학원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조리돌림(?) 당하곤 합니다. 이와 관련된 짤도 많고, 인기 웹툰 ‘대학원 탈출일지’ 도 결코 대학원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는 즐거운 대학원 생활을 즐겼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연구하고 여러 장비들을 다루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고, 2편의 주저자와 1편의 2저자로 논문을 작성하면서 자그마한 성과를 올릴 때의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기업과 과제를 수행하면서 국내 산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에서 받는 급여는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금전적으로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 질문을 답하기 전에 대학원이 왜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았습니다. 대학원은 연구자를 양성하는 곳이며 교수-대학원생 간의 도제제도(apprenticeship system) 방식의 교육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구란 새로운 것을 찾거나 새로운 현상을 보고 원리를 밝혀내는 것입니다. 이미 알려진 지식을 공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즉, 대학원에서는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주어진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힙니다. 문제는 대학원 시스템이 공정과 평등을 요구하는 현재 사회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최저임금 이상을 받아야 하는 대학원생
vs 어떻게든 돈을 아끼고 싶은 교수.
석사 2년, 박사 4년 이내에 졸업하고 싶은 대학원생
vs 학생이 더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거나 박사학위를 받기엔 아직 무리라고 생각하는 교수.

둘을 모두 만족하기엔 현재 시스템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교수의 역량에 크게 좌지우지된자는 점과 대학원생의 사회적 위치가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 대학원생은 학생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대학원 생활은 맘껏 학문을 탐구할 수 있었던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대학원에 진학할 것입니다. 왜 포닥이나 교수를 생각하지 않냐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현재 포닥이나 교수는 온전히 학문을 탐구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2년은 박사 졸업준비 때문에 글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긴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공학 박사로서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흥미로운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ngNerd

매거진의 이전글 의대생을 양성하는 과학고, 무엇이 문제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