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플렉스 시험 준비

by 소이담

내가 스페인어를 처음 인지한 건 2013년으로 어느덧 10년도 훌쩍 넘었다. 낯설고 매력적인 언어였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닌 내가 혼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인터넷의 힘도 빌려보고, 서점에 가서 참고될 만한 서적을 무작정 사서 나왔었다(잊을 뻔했는데 무료로 제공하는 EBS 스페인어 수능 강의 도움도 받았었다!). 당시 내 기억엔 지금처럼 스페인어 관련 서적이 많지 않았고, 아니면 비전공자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내가 자료 찾는 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지금 와서 보니 오래된 책들 중 유익한 책 몇 권을 뒤늦게 발견했으므로.


회사에 입사한 뒤로 점점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기력해지고, 하고 싶은 게 많던 반짝이던 나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올해 부서이동을 하면 나아질까 생각했지만 위치적인 환경만 나아졌을 뿐 사실상 회사 내에서 내가 느끼는 만족감은 전혀 나아짐이 없었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인가 싶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배우고 싶은 언어가 생겼고, 아기가 걸음마 떼듯 알파벳부터 읽는 법, 단어형태, 성수변화 등을 익혀갔다. 문자는 영어와 같고, 발음은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 되기에 오히려 영어보다 말하기는 쉽겠다 생각했다(된소리까지 있으니 괜스레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동사의 형태가 어마무시했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형만 해도 대상에 따라 동사가 6가지 형태를 가졌고, 이게 시작이었다. 이뿐이 아니라 동사 끝으로 끝나는 단어가 -ar, -er-, -ir이 있는데 그 6가지 형태마저 이 동사끝자리에 따라 변화를 가지니 그 가짓수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이십 평생 처음 익혀보는 언어형태이다 보니 언어 구조가 눈으로는 이해가 돼도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복하고 봐도 동사변화 형태가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여 구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단 현재형을 익히자 하며 반복해서 외우고, 포스트잇에 써서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과거형, 미래형으로 점점 넓혀갔고, 현재형(기본)일 때 18가지의 동사형태에 36가지 동사형태가 더해지니 머릿속에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왔다. 규칙이 분명 있지만 내 머릿속에서 각 단어에 규칙을 적용하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아 혼돈 그 자체였다. 이뿐인가. 불규칙 동사까지 존재하니 정말 나에게 해볼 테면 해봐라, 나 그렇게 쉽게 만만하게 다가올 언어가 아니다 하고 경고장을 던지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늘 내 안에는 스페인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의지는 부족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마냥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냥 꿈을 그리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운용할 수 있는 때의 마지노선은 이십 대까지인 듯하다. 그마저도 마땅히 그럴싸하게 이룬 것 없이 이십 대 후반으로 치달으면 잔인하지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처한 상황을 마주하며 현실의 땅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스페인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번씩 생각나고, 자극이 올 때면 다시금 동사형태 변화를 시작으로 문법 이것저것을 공부했었다. 나 홀로 인터넷을 보며 공부하기에는 시원하게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는 부족했기에 서점에 가서 스페인어 서적을 사 오곤 했다(목적 없이 서점에 가더라도 꼭 스페인어 코너에 가서 한번 둘러보고 괜찮은 책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러면 확실히 책 속의 자세한 설명이 아! 하고 가려움을 긁어주었다.


어느 정도 동사형태가 머리에 각인될 무렵 이번엔 '접속법'이 나를 애먹였다. 영어와 비교하며 공부하면 이해가 쉬울까 싶어 영어를 바탕으로 공부를 해봐도 영어구조와 마냥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헷갈렸던 것 같다. 접속법은 꽤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혼자서 간헐적으로 공부하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진지하게 스페인어 전공생들처럼 공부를 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나는 스페인어 도서를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스페인어 문장에 많이 노출하려 했고, 무식하지만 문장구조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 보며 자연스럽게 뇌에 입력되기를 바랐다. El país와 같은 스페인어 뉴스도 머리로 이해한다기보다 눈으로 읽거나 한 번씩은 꼼꼼하게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유튜버나 영상을 찾아보고, 넷플릭스에서 듀얼 자막으로 스페인어를 띄워두기도 했었다(스페인어 영화나 드라마도 찾아서 봤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내가 거쳐왔던 콘텐츠나 도서, 자료 등을 기억이 나는 대로 한번 정리해 보겠다. 처음의 열정과 비교해 보자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다. 그 사이 나는 취직을 했고,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주변 환경이 많이 다르다. 내가 꿈꾸던 삶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현실에 치여 불이 많이 꺼졌을지언정 한 번씩 장작을 넣어 불씨를 살려왔던 것 같다. 온기만 남았다.


서론이 길어졌다. 스페인어 플렉스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에 앞서 비전공자인 내가 스페인어에 얼마큼 어떻게 노출되어 왔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2025년 7월 중순, 여느 날처럼 "시체"처럼 출퇴근만 반복하던 내게 고민이 되는 일이 있었다. 서류 심사와 언어만 되면 그야말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선택을 한다면 나는 스페인어를 선택하고 싶었다. 또다시 내 마음속에 불꽃이 일었다. 그런데 현재 나는 어디 가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실력도 아닌데 이런 기회를 바란다는 게 욕심처럼 느껴졌다. '내 주제에 무슨...'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모순적이게도 한편으로는 이 기회를 잡고 싶었던 것 같다. 스페인어에 설렘을 가지던 이십 대의 나는 이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삼십 대가 되었다. 이제 나는 여유 부리며 기회를 나중으로 미룰 시간이 없다. 지원해 본들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한번 해보기로 했다.


플렉스 점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7월 17일 배송도 기다리기 싫어 곧바로 교보문고에 가서 플렉스 교재를 구매했다. 목표가 생기니 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걱정도 됐지만 설렜던 것 같다. 내가 시험을 치를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결과를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시험일까지 약 두 달여간 남은 시점에서 스페인어가 턱없이 부족한 내가 그때 가서 공부를 한다는 건 오만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심지어 두 달도 부족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무작정, 무식하게 '플렉스업'이라는 교재로 플렉스 공부를 시작했다.



2025-10-13. 시작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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