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와 고원

이건 그저 제 욕심일까요?

by 연Yeon

서영님에게


그날은 한 친구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이자 그애의 생일이었어요. 그애는 댄서이고 그애답게 이곳에서의 마지막을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보내기로 했습니다. 퇴근 후 빠듯한 시간을 재며 도착한 그곳에선 이제 막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거기엔 그애 말고도 아는 친구들이 이미 많이 보였어요. 우리는 춤을 추다 만났고 그렇게 알게된 함께 아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날 공항에서 곧장 그애 공연을 보러 달려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공연이 마무리되고 나선, 그애를 축하하고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한참을 거리에서 서 있다가 밥을 먹으러 갔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또 아는 얼굴들이 다 뒤섞여서 이야길 나누고 춤을 추다 그냥 다 친구가 되는, 그런 밤이었어요. 그애의 마지막 밤인 만큼 밤새 놀 마음이 가득한 채로요. 저는 빼고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정이 있었거든요.


슬슬 집에 가려는데 심야버스 시간은 애매하게 남았고, 어쩌다보니 친구 손에 이끌려 또 춤을 추러 가게 됐어요. 내일 일정을 위해서 가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새로 알게된 친구들도 좋았고 좀 더 놀고 싶기도 했거든요.


저는 파트너랑 추는 춤을 추잖아요.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일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과 비슷해요. 말을 통해서가 아닌,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게 다르지만요.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깊은 연결감을 느끼듯,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났을 때의 연결감도 비슷합니다. 저에게 왜 춤을 추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일 거예요. 다만 그 감각이 너무 즉각적이고 일시적이다보니 오히려 더 큰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너무 좋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주는 게 분명하지만 그게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좋아하는 것이지만 밤늦게 깨어있는 삶이, 식습관과 생활패턴이 무너지기 쉬운 이 세계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의문이 들 때가 자주 있어요. 그런 회의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어 시간 뒤 연희동의 한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고원은 이 공간의 이름입니다. 언덕배기에 위치해서 高原, 높은 언덕이라는 뜻이겠거니 했지만 아니었어요. 故園,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지금의 나’라는 주제로 몰입형 체험 전시가 이어져요. 서영님도 다녀오셔서 어떤 곳인지 잘 아시겠지만요.


온통 새하얀 소박한 공간에 흰 천으로 된 넉넉한 옷을 입은 안내자가 공간을 안내해주었지요. 아주 정갈하고 깨끗한 공간이었습니다. 차를 우리는 몸짓 하나하나조차 작품과 같이 군더더기 없었어요. 고작 몇 시간 전엔 스피커 우퍼가 웅웅 울리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곳에 있었는데 이런 고요함이라니. 모든 게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명상의 공간에 들어서면 완전한 암흑 속에 존재하게 되잖아요. 희미하게 일렁이는 원형의 영상 빼고요.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이란 것을 해보려 했는데, 피곤함에 얼른 끝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요함은 시끄러운 생각이 더 비대해질 공간을 만들어줄 뿐이었죠. 너무 많은 생각이 몰아쳤어요. 어제의 일들, 감정들, 또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상상으로. 가만히 명상하는 대신 움직임으로 명상하고 싶었어요. 음악을 듣고 몸을 움직이면 그 순간은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요. 움직임으로 묻어뒀던 그 모든 생각이 가만히 있으니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반대급부처럼요.


저는 고요함과 혼자만의 시간이 분명 필요한 사람인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물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컸겠지만, 가만히 명상을 하는 대신 움직임이 더 필요하다 느낀 것은 처음이었어요. 춤을 좋아하고 오래 추긴 했지만 평온하고 가만한 세계가 저의 세계라고 늘 믿어왔으니까요. 춤의 세계는 소진되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제가 돌아갈 곳은 언제나 이 고원과 같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춤 역시도 제게 필요한 세계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제 이야길 다 듣고선 서영님은 파티와 고원이라는 두 단어를 내뱉었죠. 그걸 듣고나니 제 삶을 아주 간단하게 축약해놓은 표현을 찾은 듯했어요. 그렇게나 짧은 간격을 두고 극과 극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개발자와 요가, 움직임 안내자로 살고 있는 서영님도 극단을 오고가며 저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파티와 고원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고요.


일전에 서영님에게 이야기했듯 모순, 극과 극의 공존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예요. 정적인 고요와 역동적인 춤의 세계. 둘 다 제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거든요.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춤을, 온전히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는 활자나 무의 세계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고요. 그렇게 퐁당퐁당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녔어요. 근데 그 두 가지를 오고갈 때마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늘 존재했습니다. 이쪽에 있을 땐 저게, 저쪽에서는 이게 주는 감각이 그리웠거든요.


저는 그간 너무 다른 이 두 가지가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가지를 함께 가져가려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제가 겪는 극단 사이의 모든 갈등들은 나의 욕심많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요. 욕심을 내려두고 하나만을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거나 그 순간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게 해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영님은 그 극단을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서영님, 극단이 정말 통합될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시도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게 그저 욕심이 아니라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2023년 4월 12일

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