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문자에서 바이브 코딩까지

기계의 언어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묻다

by 박소연

1. 인류 최초의 기록, 그 서사의 시작


인류 최초의 글자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쐐기문자입니다. 처음에는 거래와 세금을 기록하는 등 실용적 목적이었지만, 최초의 모험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가 이곳에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스타워즈, 성경보다 훨씬 앞서 영웅의 서사가 벌써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정말 놀랍습니다.


2. 베이직(BASIC)의 좌절과 '바이브 코딩'의 경이


요즘 AI툴을 배우고 있습니다. 소위 ‘바이브 코딩’이라고 하는 도구인데, 처음에는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놀랐지만, 곧 좌절감에 휩싸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색깔만 바꾸라고! 대체, AI가 그것도 못하는 거야?’ 화를 내고 있지요. 오래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때 베이직이라는 컴퓨터 언어로 경진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덕분에 컴퓨터를 더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게임을 하나 만들기 위해 컴퓨터의 언어를 며칠 동안 타이핑 해야 하는 것이 어린 나이에 지나친 노동으로 느껴졌고, 결과로 나온 게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이 느껴졌습니다.


바이브 코딩을 접하면서, 이때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나, 목표로 했던 테트리스보다도 간단한 게임, 고사리 손으로 영어 타이핑을 치며 보냈던 며칠에 비해서 지금 제가 만들려는 것과 들인 시간은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하고 </> 버튼을 눌러보니 새로운 언어의 세계가 열렸니다. 바로 컴퓨터의 언어, 코드입니다. 그리고 컴퓨터 언어는 1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화면을 주로 다루는 HTML, CSS, 자바 스크립트,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동작하게 하는 파이썬, 자바… 컴퓨터의 언어는 7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3. 자연어를 배운 기계, 사라지는 통번역가들


이 많은 언어가 모두 인간이 기계에게 원하는 바를 시키기 위해 만든 언어들입니다. 개발자들은 사람의 언어를 ‘자연어’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이 단어가 경이로웠습니다. 최근 </> 버튼, 키보드에 있는지도 몰랐던 F12키를 눌러보며 인류가 얼마나 기계와 대화하기를 원했는지 그 시간과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개발자들의 일자리가 빠르게 줄고 신규채용이 없다고 하지요. 개발자의 업무도 변해서 적응하지 않으면 자리보전이 어렵다고 합니다. 억대연봉을 보장받고, 골라서 일을 하던 개발자라는 직업은 기계와 대화하는 일이었습니다.


4. 기술의 종속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산다는 것


고도의 발전으로 자연어를 배워버린 기계. 인간과 기계의 소통을 하던 개발자의 직업이 아이러니하게 가장 먼저 급속도로 사라지는 현상, 이후 연속해 들리는 상상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며, 미래가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는, 저의 가뜩이나 비관적인 세계관에 확신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개인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기계에, 빅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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