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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Dec 20. 2017

66.처음으로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올리비에

올리비에는 한국의 2대 명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예전부터 추석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행사가 있는지 관심이 많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나의 고향 충북 제천으로 향했고 추석 전전날은 아버지 제사여서 우리는 이른 제사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년이 되는 해다. 평소에 제사준비를 할 때 생밤 까기는 아빠 담당이었는데 오늘 올리비에가 밤을 까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못생긴 밤을 그의 입에 넣어주니 헉 놀라며 피하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은 생밤을 먹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참 신기하네... 


곧 시작된 제사에서 올리비에와 나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술 한잔 올렸다. 올리비에가 제사상에 술을 내려놓으니 큰 오빠가 오늘 우리 아버지 행복하시겠어사위가 주는 술도 한잔 드시고” 라고 하자 나, 엄마, 새언니까지 우리 모두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게 되었다. 가슴 시리도록 사무치게 아버지가 보고 싶은 순간, 제사를 지내는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분이다. 그 날따라 제사상 위에 사진 속 아버지가 더욱 웃고 계신 거 같았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우리는 추석 음식준비에 돌입했다. 아침부터 다시 부산한 우리 집, 엄마의 부름을 받고 방앗간에 쌀을 가져다주고 온 올리비에, 잠시 후 도착한 쌀가루가 신기한지 연신 바라보고 있다. 곧이어 시작된 송편 반죽 만들기, 작은오빠가 턱턱 반죽을 처대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올리비에. 곧이어 송편 만드는 법에 대한 짤막한 큰 처남댁, 즉 나의 큰 새언니의 설명을 들은 올리비에는 그 큰 손에 조그마한 송편 반죽을 올리고 꼭 새언니가 말한 대로만 더도 덜도 아닌 콩 4개만 넣어 성실히 만들기 시작한다. 이거하라면 이거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하고 뭐든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 주는 올리비에가 참으로 고마웠다. 떡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배추전 동그랑땡 생선전 두부전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한 전을 부치기 시작하면서 그에겐 잠시 자유 시간을 주었다. 가져온 한국어 공부 책을 살펴보며 있길래, 만들어 가면서 나는 하나둘씩 그의 입에 각종 전을 넣어주었고, 전을 부치는 동안 다 쪄진 송편들이 등장했다. 김이 솔솔 나는 깨송편 밤송편 콩송편을 하나씩 맛보게 하였다. 깨송편을 맛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리고 각종 전에 송편에 먹고도 먹고 정말 쉴 틈 없이 나도 엄마도 무언가를 권하자 결국 그는 엄마에게 “아니요 배불라요 배불라요” 라고 한국말을 해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자고 하니 아 하루 종일 먹었는데 저녁을 또 먹느냐고 묻는다. 원래 추석엔 그렇게 계속 먹어서 우리가 살이 찐다고 설명하자 크게 동의하는 추임새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혼여행에서 싸우고, 돌아와서도 또 싸웠기 때문에 제천고향집에서 아버지 제사준비, 추석음식 준비, 차례 지내기, 성묘가기 등 바쁜 모든 일정을 그가 잘 소화할지 그리고 가족들과 다 같이 자야하는 상황을 잘 견딜지 조금은 걱정이 앞섰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제천에서는 너무 너무 잘 지내는 것이다. 게다가 동시에 여러 명이 며칠간 한국말을 계속 하는걸 듣다보니 시간이 날 때면 스스로 책을 피고 한국어공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두 명의 어린 남 조카들과도 잘 놀아주는 모습에 너무 감동했다. 온 가족이 다모인 첫날밤, 밤이 다가오자 그가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더니, 침대가 2개인데 모두들 어디서 자냐고 묻는다. 음... 곧 알게 될 거야 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리고 올리비에가 씻고 거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거실과 모든 방바닥에 펼쳐진 이불을 보고 아....이거구나 하면서 나를 처다 보았다. 모두가 바닥에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는지 나중에 파리에 돌아와 친구들이 한국에서의 결혼식과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 할 때마다 이 장면을 이야기 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바닥에서 자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밥 먹고 놀고, 티비보고, 음식 하던 거실 바닥에 이불이 전부 깔려지고 죄다 누워 티비를 보는 모습이 그에겐 진풍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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