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묘 Feb 20. 2023

한국 사람인데 왜 그래요?

미얀마 인레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껄로에서 이틀 동안 한국 여행자 둘과 저녁을 함께했다. 

둘은 연인이 아니었지만 한 방을 같이 나눠 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어울려서인지 재밌고 계속 같이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자 아이가 누구에게나 한국말로 말하는 점이 거슬렸다. 

좋은 이야기라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건 별로다. 

외국인들이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떠들 때 기분이 안 좋았다. 

하물며 사람을 앞에 두고 평가와 험담을 하곤 했다. 

그런 건 상대도 느낀다. 예의가 아니지, 암. 

둘은 인레에 도착해 숙소까지 날 찾아왔다. 

보트 투어를 함께하자고 권했다. 

나는 이미 다른 여행사에 예약해 둔 상태여서 기뻤다. 

휴~우 겨우 벋어 났다. 

마음이 맞지 않는 여행자와 어울리게 된다면, 빨리 딱 거절할 것! 

당연한데도 힘든 일이다.


인레 파웅도우 축제에 모이는 사람들
배 경주를 기다리는 사람들

배를 타고 인레 호수로 나아갔다. 

길고 검은 배들이 수로를 지나갔다. 

배 위에는 짐이 한가득. 또는 사람들이 옹기종이 앉아 있었다. 

마주 오거나 앞지를 때,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미소 지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배는 곤돌라와 닮았다. 꼬리에 달린 모터로 물보라를 일으키는 점이 달랐지만. 

짐이 없는 가벼운 배는 앞부분이 높이 들린 채 달렸다. 

호수로 내려와 몸을 씻는 여자들도 보였다. 

자연스럽다. 그래서 아름답고. 

좁은 수로를 지나고 나니 확 트인 호수가 나왔다. 넓었다.

색연필을 가지고 오지 않을 걸 후회했다. 

인레 호수와 파웅도우 축제 스케치

마침 축제였다. 파웅도우 사원으로 많은 배가 모여들었다. 

호숫가뿐만 아니라 수로까지 꽉 찼다. 

햇볕이 따가워 우산을 쓰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식과 기념품을 파는 배가 빼곡한 배들 사이사이를 능숙하게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배 경주가 아주 재밌다며 기다렸다. 

배가 하나씩 등장하자 부족의 의상에 대해 설명했다. 

검은색 옷은 주로 산에서 온 부족이고 황토색은 평지에 사는 부족이라고 했다. 맞습니까? 

대충대충인 가이드라서. 

박카스 티셔츠를 입은 부족이 배를 타고 등장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박카스 티를 많이 입고 있었다. 

정박한 배들 뒤로 커다란 박카스 광고판이 서 있었다. 

무얼까? 간판도 별로 없는 이곳에서 박카스 광고를 보다니. 

티셔츠는? 이상하고 낯설었다. 

파웅도우 사원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축제에 참가한 여러 부족들
배 경주를 앞둔 부족들

한국인 자매와 같이 하는 투어가 좋았다. 

자매 중 언니는 양곤으로 봉사 활동을 왔다. 

돌아갈 때가 되자 동생과 미얀마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매 중 언니가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 사람인데 왜 그래요?" 

동료 한국 친구가 좀 뚱뚱한 편인데 미얀마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잘생기고 예쁠 것이라고 기대한단다. 

관광객을 많이 보는 가이드 또한 그렇다고 믿고 있었고. 

평범한 우리를 보고도. 가이드는 남상미에게 빠져 있었다. 

다 드라마 때문이다. 조만간 꿈이 깨질 터인데.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해졌다. 

돌아가는 배 뒤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일부에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구름이 배를 빠르게 쫓아왔다. 

쫄딱 젖을까 봐, 나는 조마거리며 뒤돌아보았다. 

배를 쫓아오는 비구름
인레 호수 + 인레 호수 식당에서 먹은 흙 맛 나는 생선 요리


비싼 숙소에서 사치

한 시간 남짓 비가 쏟아졌다. 낭쉐 시내를 구경하려고 진창이 된 길을 나섰다.

여행 책에 소개된 중국 식당에 갔다. 깨끗하고 친절했다. 

면이 얇은 국수를 먹었고. 아주 맛있었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었는데, 뜨거운 국물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아저씨가 잘 먹었는지 내게 물었다. 

물론 "맛있어요!" 

렛츠 고, 이제 갈까? 이 평화로운 식당에서. 

해가 구름을 벋어 나 눈부시게 밝아지기도 하고. 

바람이 다시 살살 불기도 하고. 

세상은 빛나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했고. 

내 배는 든든하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여유로웠다.

인레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뜨끈한 국수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
작가의 이전글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외쳤다. "주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