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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Dec 11. 2022

택시비 모두를 돌려주었다.

미얀마 양곤 + 만달레이 + 밍군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양곤역 길 건너편 간이 매표소에서 만달레이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

상냥한 직원은 터미널이 바뀌었다며 신신당부하는 듯했고.

티켓 뒤에 주소를 꼭꼭 적어 주었다.

까막눈인 나는 숙소에 택시를 부탁하며 바뀐 주소를 건넸다.

낮잠을 주무시던 숙소 할아버지가 깜박 잊고 택시에 전하지 않았고.

나는 멀리 떨어진 다른 터미널로 가게 되었다.


만달레이행 버스를 찾았지만 터미널은 넓디넓었고.

다른 터미널임을 알아차렸을 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짐을 싣고 호객하는 분들이 택시를 빨리 잡아주었고. 

다행히 버스 출발 직전에 바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켓을 확인하는 중, 다른 터미널에 갔다 오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직원 둘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더니 

갑자기 내가 쓴 택시비 모두를 돌려주었다. 

버스비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것. 

미얀마에는 이런 문화가 있습니까?

떠나는 날 양곤 숙소 사장에게 물었지만 갸우뚱 이상해 했다.

무슨 일일까? 


만달레이까지 꽤 편안했던 야간 버스에서 내렸다. 

세투하는 포춘 호텔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20살 전후로 약간 수줍어하는 모토 운전자다.

잠시 숙소에서 쉰 후, 세투하와 만달레이 힐에 갔다.

만달레이 힐에 오르는 동안 그는 내내 나와 함께 걸었다.

신기했다. 세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지 가이드는 아니었으니까.

옆에 계속 누가 있으면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조카를 닮은 세투하는 편안했고, 내가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

주로 한국 드라마,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쓸모없는 이야기로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의리가 생겼다.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세투하와 함께 하기로 했다.


포춘 호텔을 기대하지 않았다.

악담에 가까운 후기를 읽었다.

방은 꽤 어두웠고 욕실도 공용이었고.

당연 찬물이라 생각했던 샤워기에서 따듯한 물이 나오자. 난 열광했다. 

직원들이 밤낮으로 청소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해주겠다던 블랙퍼스트 박스를 너무 이르게 출발한다는 이유로 취소했으며.

샤워도 전날만큼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사람의 마음이 이리 간사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배려는 행운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도움이 없으면 실망한다.

여행은 이 두 가지가 공존하지만.

미얀마는 실망이 그리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고, 사람들이 좋고, 늘 미소 짓고,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조차 수줍음이 많고 선량하다.


배를 타고 밍군에 놀러 왔다.

핑크색 승복은 여자 스님이십니까?

새끼 강아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온몸에 작은 벌레가 줄을 맞추어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어미도 그 아이를 내버려 두었다. 다른 새끼들을 돌보느라.

벌레로 뒤덮인 그 아이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내가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밍군에서는 우마차를 이용하는데, 혼자 보다 둘이 가격이 좋았다.

만달레이 힐에서 힐끔 보았던 아주머니가 보였고, 난 같이 하자고 꼬셨다.

샌프란시스코 변호사인 아주머니는 돈이 아쉽지 않은 듯.

같이 하자고 하니 재밌어하며 오케이 했다.

작은 돈을 아끼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웠다.

아주머니는 샌프란시스코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 나에게 이야기했고. 

난 환상을 품게 되었다. 앞으로 꼭 가고 싶은 곳.


만달레이에서 AM 5:30 출발하는 슬로 보트를 타야 했다. 

세투하가 새벽 5시에 데리러 올까 걱정했다. 

약속하고도 안 오는 기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듯한 세투하는 어김없이 제시간에 와주었고. 

난 그가 약속을 지켜주어 몹시 기뻤다.

세투하의 여동생과 엄마를 위해 마스팩을 선물했다.

바간으로 가는 슬로 보트에 올랐을 때, 맘이 허전했다.

세투하 덕에 만달레이에서 재미있게 보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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