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묘 Oct 06. 2022

이 아이들에게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인도 마이소르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인도 방랑> 후지와라 신야


기차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까지 빙 돌아 걸었다. 

길이 울퉁불퉁 불편해 차로로 내려와 걸었다. 

땡볕 아래 짐을 끌고 메고 걸어 가 탄 69번 버스가 다시 기차역에 앞에 섰을 때. 

얼음이 되었다. 난 참 바보다.


유스호스텔에 잘 도착했다. 그러나 풀이라고 한다. 

침대 40개가 다 찼다고? 버스 타고 20분을 왔는데.

나는 로비 소파에 쓰러졌다. 

어느 호스텔로 가야 하나? 확 비싼 곳으로 갈까? 아끼려고 했는데 참 안 풀리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켜보던 카운터 직원이 나를 불렀다. 

아저씨의 이상한 발음과 내 가난한 영어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손짓 발짓을 더하여 나눈 대화는 방에 간이침대를 넣어준다는 것 같았다. 

오케이 땡큐. 이 짐을 지고 끌고 땡볕에 어딜 가냐고요.

인도. 인도. 인도. 

참 실망스럽고 안 풀린다 싶을 때 또 이런 따스함이 있구나.


3층 방에는 이층 철제 침대가 빼곡했다. 

식민지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영화 '연인'의 기숙사가 떠올랐다. 

안쪽에 한 계단 높은 턱이 있고, 그 바닥에 매트리스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 

창가에는 다리가 휘어 기울어진 간이침대가 있었는데. 

바로 내 자리였다.

마이소르 시내에 나갔다가 오후 6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방문이 잠겨 있었다. 내가 1등으로 돌아온 것.

씻고 머리를 말리고 빨래까지 했는데도 아무도 안 들어왔다. 

뭐야, 침대 40개가 다 찼다더니. 맞아? 이상했다. 

싸서 예약해 놓고 안 온 거라 예상했다. 

하루 밤에 3000원이지 않는가. 

그럼 모기장이 있는 이층 침대로 옮겨볼까?

살펴보니 커튼은 색이 바래 있고 모기장은 먼지로 꺼멓다. 

빨리 포기하고 내 간이침대에 시트를 말끔히 깔았다. 

침대에 누워 보니 삐뚜름, 옆으로 기운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왼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몸을 끌어올리려고 움직이면 부실한 침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발만 살짝 움직여도 삐걱삐걱 큰 소리가 났다. 

자다가 침대가 무너져 버리는 건 아닌지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소녀들이 방에 가득했다. 

잘 때 보지 못했던 소녀들이었다. 

동트기 전 일어나 불을 켜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옷맵시를 살피고 있었다. 

소녀들이 이용하는 거울 앞에 내 간이침대가 있으니. 

나도 일어날 수밖에. 

몸이 욱신거리고 잠이 덜 깼지만 일단 일어나 앉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체조를 했다. 

나는 일찍 나가봐야 할 일이 없었다. 씻고 머리를 빗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소녀들을 지켜보았다. 

소녀들은 사탕처럼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사리를 입고 있었다. 

합창 대회에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몇몇은 내게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수줍어하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었고.

순식간에 소녀들이 다 나갔다. 

나만 숙소에 남았다. 

빈 침대가 생겼는지 묻기 위해 카운터로 내려갔더니. 

친절했던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예약이 다 찬 상태이고 간이침대라면 OK! 

몇백 원 하는 구내식당 볶음밥이 맛있었다. 운이 좋다.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나 했다. 

침대가 삐뚤어진 건 둘째치고 저녁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웠다. 

샤워장은 어두침침했고 창고 같아서 낮에도 무서울 정도.

하루가 지나자 편안해졌다. 

며칠 더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풋, 이 적응 능력이란.

길거리 식당에 갔다. 혼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마침 손님이 없어 여섯 개 의자가 있는 큰 탁자에 앉았다. 

후 손님들이 들어와 굳이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다른 빈 테이블에 앉으라고 눈치를 주어도 손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빈틈없이 내 옆과 앞에 앉아 기어이 음식을 주문했다. 

내가 먹는 걸 신기해하며 맛있냐고 물었다. 

자신들의 음식이 나오자 맛보라며 자꾸 권했다. 

옆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너 참 하얗구나. 하얀 것은 굿!"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검은 피부도 굿이에요."

할아버지가 미소 지었다.

"우리는 모두 까맣지. 그래서 흰 걸 좋아하지."

쿵! 그들보다 조금 하얗다는 이유로 내가 이렇게 관심을 받고 있다니. 

무언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배우는 것일까? 

마하라자의 궁전에 불이 켜지자 "와우~"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와~" 환호했다. 기대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군악대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불을 밝힌 궁전이 몹시 찬란해서 꼭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 호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아름다운 건 슬픈 것일까?

이 아름다움이 한순간이기 때문일까?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이미 깜깜해진 길을 재빠르게 걸었다. 

가로등이란 없었다. 

관광지 주위를 몇 걸음 벋어 나자 바로 암흑이었다. 

한동안 어두운 길이 이어졌다. 

모퉁이를 돌자 제법 사람들이 다녔다. 

난 부모와 아이 둘이 있는 가족 뒤를 바짝 쫓았다.

쫒던 가족과 길이 달라지자 이번에는 평범한 아주머니 뒤를 쫓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안전을 위해. 


방 앞에 옥상이 있었다. 

빨랫줄이 여러 개 늘어져 있었고, 허름한 간이 식탁과 의자가 있었다. 

난 식탁에 앉아 슈퍼에서 산 포도와 토마토, 포테이토 칩을 먹고 있었다. 

저녁으로 궁상맞게. 

한 남자아이를 씻기고 있던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온몸으로 말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받히고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아이가 쓰러지는지 봐 달라는 거 같았다. 나는 OK. 

남자아이는 발가벗은 채 빨간 플라스틱 큰 대야에 앉아 있었다. 

새까맸고 눈이 엄청 크고 몹시 말랐다. 

몸이 불편하고 정신도 불편한 듯 보였다. 

나는 지켜보았다. 아이는 목욕만으로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다.

옆으로 넘어지면 혼자 일어서지 못할 테니까. 

아이의 어머니가 돌아오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방이 밝아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잤다.


합창 소녀들이 이번에는 핑크 옷으로 맞춰 입었다. 

순식간에 다 나갔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엄마들만 남았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은 침대 사용이 힘들어 보였다. 떨어질 수 있으니까. 

입구 쪽에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침대가 비어 있었나?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돌보았다. 

돌아가면서 자리를 비웠다. 빨래를 하거나 씻으러 가거나. 

남은 엄마가 누워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내 침대는 안쪽이었지만 세면실을 오고 갈 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내다 보니 YMCA는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다. 

욕실도 쓸만하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매트리스가 놓인 바닥도 깨끗했고. 

다들 맨발로 다녔다. 늘 깨끗이 청소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시설을 깨끗이 썼다. 

밤마다 옷을 빨았고 아침마다 몸단장을 했다. 

그러면서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들의 배려에 비해 내가 너무 하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음이 불편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층 침대 뒤에 몸을 숨기고 눈만 빼꼼.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짐을 정리하는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한참을 보다가 도망갔다. 잠시 후 다른 친구들을 데려왔고. 

이번에는 숨지 않고 제법 용기 있게 나섰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에게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남인도에는 동양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은 생김새가 다른 나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몸이 더 불편해 보러 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 가슴이 아팠다. 

아픈 아이를 둔 가족 특히 어머니의 삶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여행도 가능하면 좋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잠시도 아이와 떨어져 있기 힘들었다. 

지원, 배려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사회적 시선과 건강치 못한 아이를 낳았다는 괜한 자기비판과 싸워야 하리라. 

나는 질문하게 된다. 내 눈에도 편견이 가득했나? 

괜찮은 척 아이들에게 웃음 지어 보였지만, 

한쪽에서는 안쓰러움이 불편함이 있지 않았을까? 

인도에서 내 치우친 생각들과 만나게 된다. 

그 얼마나 평범하고 겁 많고 오히려 하찮은 나인가!

작가의 이전글 돌 거인들이 싸우다 지쳐 잠든 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