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꿈이야기
만나다
방송 PD로 일한 지 10년 차 때의 일이었다. 한 자선단체와 협업하여 '사랑의 도시락 캠페인' 홍보영상을 맡게 되었다. 그 단체의 후원을 받는 어느 어린 남매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로 후원을 독려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이런 홍보영상제작은 처음이어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사실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우연히 맡게 된 이 일이 어쩐지 마음도 불편하고 어디까지 어떻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맞는지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일단 그분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동의한 이상 어설프게 찍지 말고 제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상황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고 그런 우리 이웃들의 불편한 진실을 극대화하여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방송인으로서의 나의 입장도 편하진 못했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이 방송되고 한 달 뒤 그 자선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작년 한 해 동안 들어온 후원 전화보다 이 영상이 방송되고 최근 한 달간의 후원 전화가 훨씬 더 많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내심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 편 그 사연자들이 불편을 겪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했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이것이 부끄럽지만 일을 통해서나마 내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직접 만나 소통하며 무언가를 했던 최초의 경험이었다.
성장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해온 워킹맘인 나에게 아이들의 방학은 언제나 큰 숙제였다. 적어도 방학 두 달 전부터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설 학원들의 여름방학 캠프나 학교 방학특강도 금방 마감이 되기 마련이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큰 과제였다.
출근 전에 좀 더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놓기도 했고 배달을 시켜주기도 했고 대학생 돌봄이나 학교 방학 돌봄, 동네 공부방 등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여 아이 성향, 주변 환경, 경제적인 비용 등을 고려한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방학마다 아이별로 나름 정교하게 설계해야만 했다. 직장을 다니며 그렇게 두 아이의 초등 6년을 전쟁처럼 건너온 것 같다.
중간에 약 2년의 육아휴직으로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있던 꿀 같은 시간도 보냈지만 복직하고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방학 설계가 어려운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초등시절이 다시 못 올 얼마나 어여쁜 시절인데 그걸 다 즐기고 누리지 못하고 하루하루 전투하듯 보낸 것 같아 지난 사진을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일하는 엄마로서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후배들이 아예 아이를 안 갖는 건 아닌가, 내가 아이 키우며 행복했던 얘기는 너무 안 해준 건 아닐까 아이를 안 갖는 후배들을 보면 워킹맘 선배로서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하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듯 직장과 가정 사이를 오가며 어느새 아이들도 훌쩍 자라고 힘들었던 만큼 보람을 느끼며 나 자신도 조금은 성장해 온 세월이었다.
소망하다
20년 차를 넘기며 내가 언제쯤 직장생활을 마감할 것인가에 대해 이따금 생각해 본다. 요새 유행하는 파이어족을 꿈꾼다기보다는 그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본다. 다행히 나는 사십 대가 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관심도 갖고 잘해주려고 노력하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보는 편이다.
내가 태어나서 생계를 위해 일하고 내 아이들과 내 가족만을 위해 살다 간 것이 전부라면 난 정말 많이 아쉬울 것 같다. 그래도 내 몸이 아직 건강할 때 이웃에게 아무 대가 없이 봉사하며 지내는 시간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60세도 요새 청춘이라고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캠페인 제작을 하며 만났던 그런 어려운 이웃은 여러 단체와 사회복지 제도에서 도움의 손길이 닿을 것이고 나는 복지 사각지대 그러니까 저소득층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부유층도 아닌 나처럼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도시락을 싸주고 싶다. 저출산 시대를 온몸으로 막으며 일과 가정 양쪽을 오가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일단 걸어서 오고 갈 수 있는 가까운 이웃 중에서 일하는 엄마의 저학년 아이들 몇몇에게라도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 일회용품이 나오지 않도록 도시락 두 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아주 많은 수는 아니어도 적어도 대여섯 개 정도의 따뜻한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시락을 싸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규모로 말이다. 작은 규모로 오고 갈 때 결속력 면에서나 신뢰 면에서나 강하고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방학 때가 되면 과거의 나처럼 난감해하는 워킹맘들이 우리 주변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소중한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고 소중한 엄마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내 이웃의 곤궁함을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다고 아이들이 한 참 어린 시절에 동시에 업무도 한창 바쁜 워킹맘에게 혹시 여유가 된다면 도시락 편지 같은 것을 써서 그들이 꽃처럼 어여쁜 시기를 잘 누릴 수 있기를 마음으로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아무 대가가 없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10년 20년 후에 그 도시락을 먹은 아이가 잘 자란 것을 꼭 한 번은 보고 싶을 것 같다. 잘 컸다고 등도 두드려주고 격려도 해주고 싶지만 이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작은 도시락 하나로 서로 마음과 마음을 나눴으면 그뿐이리라.
물론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음식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리스크들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의 눈치가 살짝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작 나의 아이들에게 엄마 밥을 제대로 못 해줬으면서 이런 행동을 하냐는 질문에서 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그렇기에 나처럼 일하는 엄마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면 우리 가족들은 어떤 표정일까?
게다가 음식 솜씨도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내가 누구 밥을 해준다는 것인지 말이다. 현재로선 그저 마음이 앞서는 나의 작은 소망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하지 못할 이유는 수백 가지도 넘지만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건 어쩌면 용기 있게 내미는 작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쑥스럽지만 나는 내 나름의 워킹맘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 캠페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따뜻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그 김이 다름 아닌 만든 사람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아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기 가득한 밥을 먹고 잘 자라길 어느 엄마가 바라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너무 늦지 않은 나의 인생 어느 계절 내 이웃에게 작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 수 있길 나는 소망한다 내가 못 해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