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고무장갑

나의 행복을 위해 놓을 수 없는 두가지

by 블루비얀코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던 지난 한 해, 중학생 아들들이 그 답답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단연코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라는 컴퓨터 게임 덕분이었다. 줄여서 ‘롤’이라 부르는 이 게임은, 그래픽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에서, 수도 없이 다양한 캐릭터들 중 하나를 아바타로 정해, 다양한 전략과 무기로 상대팀을 공격하여 ‘무찌르는’ 게임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같은 팀 내 플레이어와 계속 말을 주고받으며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친구가 고픈’ 아이들은 시간이 되면 사이버 세상의 한판 속으로 자연스레 집결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컴퓨터 게임이며, 가상 스포츠의 세계를 일컫는 ‘e-sports사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끈, 이 시대 가장 대표적인 게임으로,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들이 후원하는 프로팀이 존재하며, 매해, 나라별 최고의 팀들이 참가하는 롤 월드컵(롤드컵)이 열린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롤의 캐릭터 한정판을 내놓는 정도이니, 이 게임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아들들은 각자의 방에서 헤드셋을 끼고, 침을 튀기며 팀메이트와 작전을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숨 막히는 게임을 치른다. 격앙된 목소리로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들들에게 이 게임의 승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야! 뇌가 있는 거야?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도대체 왜 그걸 못해! 똥 손이야!”


가만 듣고 있다 보면 게임의 승패는 ‘큰 그림을 보며 판을 읽는 전략’‘타이밍에 맞게 성실히 움직이는 손놀림’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히 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들의 용어로는 그걸 ‘뇌지컬(뇌와 피지컬의 합성)’ ‘피지컬’’ ‘포지션’이라 부른다.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 게임을 이기고 나면, 마치 세상을 다 얻었다는 듯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방방 뛰며 방을 나오며 외친다. “엄마 밥 주세요~^^”


이쯤 되면 ‘인문학과 고무장갑’이란 제목을 달아 놓은 글 앞머리에 왜 이렇게 게임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문학과 고무장갑, 그 두 가지는 내 삶을 가장 풍성하게 하고 나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죽는 날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다 생각하는 두 가지 도구이다.


대학 졸업 후 23년 동안, 대학원 유학 2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꾸준히 사회생활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으면서도 두 다리 뻗고 낮잠 한번 길게 자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 같다.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졸업장도 얻었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일하며 달러벌이도 해보았으며, 젊은 여성들의 로망인 패션잡지회사의 CEO라는 화려한 명함도 가져보았다. 그렇게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도 살았었다. 노력한 만큼 많이 누리고 그것으로 행복하기도 했다.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너무 힘겨웠다. 사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말할 수 없이 책임이 무거워졌고, 동시에 아이들이 커지면서 친정엄마나 도우미 아주머니에게는 맡길 수 없는, 엄마가 챙겨야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매일의 삶이 마치 수십 개의 접시를 떨어지지 않게 동시에 돌려야 하는 곡예사의 삶처럼 힘들고 숨이 찼다.


멈춰야지 멈춰야지 하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더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화려한 주인공의 옷을 가능한 오랫동안 입고 있어야, 내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내가 꿈꾸던 그 고지에 도달하면, 그때 이 모든 접시들을 내려놓고 품위 있게 자유로워지리라 다짐했었다.


바로 그때 신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위경련으로 뒤틀리는 배를 움켜쥐며 응급실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것 같다. ‘좀 쉬게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여자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이 방법이 최고지’ 하며 아들을 동원하셨다. 2017년 5월 봄날, 초등 5학년이었던 아들의 하루 저녁 반란으로 인해 나의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접시 돌리기는 멈추어졌다.


동시에 돌리던 큰 무게의 접시를 내려놓고 나니, 처음엔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는 무대에 올라가지 못할 거란 생각이 나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붙잡을 끈이 필요했다.


그때 만난 게 성경이었다. 교회에 출석했지만 처음엔 예배에 동화되기도, 교인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얻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공부는 자신 있으니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때마침 어떤 엄마가 아들을 영어성경을 읽게 했더니, 학원 안 가고도 강남 자사고서 1등급을 유지해 다른 학부모들 부러움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1등급 한다는데 그것쯤 못하랴? 일단 내가 해보고 좋으면 아이들도 시키리라 생각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보니 그 안에 인간사가 그대로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천 년 훨씬 더 전의 이야기인데 현대의 인간들이 갖는 감정과 사건과 사고들이 그대로 들어있고, 역사의 반복이 실제 현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똑같았다. 장르도 시, 문학, 자기 계발, 철학, 역사의 여러 가지 인문학의 장르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성경을 읽고 나서는 서양철학자들의 인문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의 수필, 오거스틴 고백록으로 시작해 루소, 몽테뉴, 니체 등 이전 같으면 관심 조차 두지 않았던, 관심이 있어서 열어보아도 어렵고 이해가 어려워 한두 페이지를 넘어가기 어려웠던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성경으로 시작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 실제 서양 인문고전의 가장 큰 줄기가 성경과 신학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6학년 국어책을 어렵사리 읽어낸 아이가 이후, 저학년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현대에 나온 책들은 3학년 교과서쯤, 요즘 나오는 에세이집이나 자기 개발서는 1학년 교과서 난이도로 느껴졌다. 재테크 서적 정도는 앉은 자리서 책 한 권을 끝내는 경우도 많았다.


책을 읽는 게,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1등급 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존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인문고전을 읽다 내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만나거나, 내가 가진 생각과 같은 생각을 했던 거장들을 마주하기라도 하면 그 순간 ‘내가 신이 낸 문제를 풀어낸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과 함께, 거장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명예의 전당의 복도 끝 어디쯤에 내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비싼 옷을 사서 걸치거나, 해외 유명 휴양지 고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효용이 커지는 그런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위안 삼아, 애들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며 지냈다. ‘언젠가는 이 책들이 나를 고무장갑에서 ‘해방’시켜 다시 무대 위로 올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통해, 내 삶의 자리와 상황의 의미들이 해석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유명한 이야기 ’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속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큰 뜻을 믿고 따랐고, 둘째는 오랜동안 양치기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서, 맹수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했던 수없이 많은 돌팔매질을 해가며, 덩치 큰 골리앗을 이기기에 필요한 돌팔매 능력을 키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의 삶으로 가져오니,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는 인문학과 동시에 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훈련되고 있는 어떤 능력이 훗날 내가 골리앗이라는 불가능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필살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해방되고 싶었던 고무장갑, 어쩌면 그 고무장갑이 나를 다윗으로 만들어줄 차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고무장갑에, 내 매일의 삶에서 지루하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는 열심히 매일의 일상을 대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삶에 반가운 변화들이 생기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느끼며, 그동안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주변이 깨끗했던 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이 드니, 웃게 되고 내가 웃으며 남에게 친절하니, 남들도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친절로 대해주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꽤 괜찮은 음식을 차려내는 순간, 깔끔하게 집 정리를 마치고 난 순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만 크고 몸은 작은 영화 속 ET와도 같았던 나의 영혼이 꾸준히 몸을 쓰는 과정을 통해 전체적인 균형이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또 한 가지는 한참 후에 우연히 느끼고 신기하다고 여긴 것이었는데, 책을 읽어도 생각이 통합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을 청소할 때나, 장을 봐서 들고 걸어오는 순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긴 이유도,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이 산속 수련을 마치고는 마을로 내려와 삶을 살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오히려 청소할 데가 없나 찾아다니고 일부러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선다.


이렇게 나는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 오랜 역사를 통해 그려 온 그림을 보는 시각을, 고무장갑을 끼고 매일의 삶속 수련과정을 통해 내 삶의 자리를 소중하게 느낄 줄 아는 건강한 몸과 균형 잡힌 마음을 얻게 돼가는 것 같다. 내가 있는 자리가 소중하니,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도 줄어들고, 내 안의 빛이 느껴지니 다른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되는 듯하다.


무대에서 내려오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대치 않게 예전 꿈꾸었던 ‘품위 있는 자유함’을 얻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다시 감사하다!


어쩌면 컴퓨터 앞에 그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게임을 하는 중학생 아들들은, 엄마가 보내는 매서운 눈초리를 견뎌가며, 삶을 사는 지혜와 진리를 본능적으로 체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뇌지컬과 피지컬을 두루 갖추고, 나라는 캐릭터를 파악해 포지션을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자유와 행복’이라는 최종 승리 카드를 거머쥐는 비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