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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Oct 19. 2022

사랑으로 이야기하기, 이야기로 사랑하기 17

마태복음 -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

일주일 독한 감기를 앓았다.


좋아하는 책을 펼칠 기운도 없어 TV만 켜놓은 채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통증은 힘들었고 누워있는 자리는 갑갑했다.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같던 엄마가 아프다고 누워서 끙끙거리니 막내 녀석 걱정이 되는가 보다.  "엄마 괜찮아? 하며 살갑게 침대 옆자리를 비비고 든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오늘은 병원 가서 링거 맞는데 간호사가 혈관 찾다가 실수로 신경 쪽을 살짝 건드린 것 같아. 그런데 아주 자지러지게 아프더라고.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질렀어.


몸이 아프다는 거 너무 힘든 거 같아..... 일주일 감기도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데 할아버지는 13년 동안 온몸의 경련과 마비가 계속되는 상황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유튜브 영상과 엄마와의 대화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던 녀석이 무심코 툭 한마디 내뱉는다.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겠어?

 

"무슨 뜻?"

 

"음.... 할아버지의 힘드신 삶을 본 누군가가 장애인을 돕는 훌륭한 시스템을 개발한다던지.”

 

“그 누군가가 누굴까?”

 

아들은 머릿속으로 생각나는 사람들을 스캔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나네. 내가 해야겠네.” 했다.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아이의 마음과 눈은 스마트폰 속 영상 속으로 떠나 버렸지만, 내 마음속엔 마치 하늘 저편에서 보내진 천사의 노래를 엿들은 듯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는 아이의 믿음이, 그리고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픔을 본 자신에게 맡겨진 것일 수도 있는 소명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아이의 성숙함이 기특하고도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께 성경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로마서'를 읽어드리기 위한 일 년 반의 여정!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원리를 설명한 그 책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지난 1년 반 동안 로빈슨 크루소부터 시작해 20여 권의 책을 읽어 드리며, 아버지와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밀함을 얻게 되었다.

 

성경으로 들어와 구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읽어드렸고, 그 이야기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성과 배반에 대해 성경이 그리는 바를 보여드렸다.


이젠 신약의 복음서를 통해서 그 속에 나타난 예수를 만나게 해 드리면 미약하나마 '로마서'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약의 첫 복음서 마태복음을 골랐다.

 

'아버지, 엄마, 오늘부터는 신약성경의 첫 책 마태복음을 읽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구약의 이야기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마지막 지점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미래에 어떤 영광의 시점을 향해 밑거름이 되어 지기 위한 것들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아버지. 엄마의 지난 13년간의 삶이 딸로서 가슴 아프고 힘들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관적이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분의 힘든 삶이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어느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보다 크고 높으시다는 믿음으로, 오늘의 시간이 거름이 되어 나타날 미래의 큰 영광스러운 순간을 상상하시며 힘 얻으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께 막내 녀석과의 대화 내용도 말씀해드리고 마태복음도 낭독해 드렸다. 아버지는 친정에 갈 때마다 막내 녀석은 안 왔냐고 거듭거듭 찾으셨다.

 

어느 날,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많이 지치신 듯했다. 당신 몸까지 컨디션이 안 좋으시면서 '나까지 눕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마의 마음을 뒤 흔드는 것 같았다. 마태복음 정도로는 위안이 되지 않는 듯했다.

 

남편에게 낭독 파일을 들려주며 "예수님이 어떻게 느껴져?" 하고 물었다. 

"무서워." 

"잉? 예수님이 무섭다고?"

 

바리새인들을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가 너무 딱딱하고 무섭게 전달했나 보다. 이건 잘 못돼도 한참 잘못된 건데. 예수님은 사랑인데.... 어째야 하나?

 

아~참, 엄마는 노래를 좋아하시지! 코로나 기간 내에도 음악으로 버티셨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위안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처럼, 노래처럼 들려야 한다.

 

아뿔싸, 그동안은 책 내용에 전달에만 급급해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최대한 노래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가수가 되어보는 거야!

 

마음이 바뀌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책을 읽는 것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녹음된 소리도 더 편안했다. 그래서 모든 것에 힘을 빼야 한다는 소리구나.

 

며칠 후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당신 있는 세상에서 더 살고 싶으시단다. 너의 부친의 말씀이란다(스마일)(스마일)(스마일)"

 

저승사자 날 데리러 와도 난 안 따라갈 거라고 하셨단다. 난 당신 있는 세상에서 더 살고 싶으시다고...

 

이렇듯 추앙에 가까운 아버지의 한마디가 엄마의 고된 삶의 응어리를 단번에 풀어내버렸다!

 

그 오랜 세월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멍에에 묶여있어도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간병해주니 살만하고,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주느라 손가락 관절이 오그라들고 발바닥이 다 닳아 없어지는 듯해도,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남편의 연가가 엄마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노래인 것을.

 

"정말 무슨 변고였는지 몰라, 멀쩡하던 사람을 저렇게 눕혀놓고 13년을.... 하나님이 정말 있기는 한 거니?" 그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엄마의 탄식 섞인 질문이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전에 들어보지 못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하긴 그걸로 인해 우린 그전에 모르던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

 

엄마의 고백은 이 세상 어느 가스펠 가수도 따라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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