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신약성경 에베소서 6:11
성경에서 전신갑주는 갑옷을 말한다. 영어로는 Armour of Light라고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의로 무장하라는 성경의 어구이다.
몇 년 전 합스부르크 전시회에서 만난 몇 구의 잘생긴 갑옷들은 그 재료가 차갑고 무거운 철이지만 무척이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빛을 받아 빛나는 갑옷의 몸체는 민트, 핑크, 노란빛이 어우러진 오묘한 색을 띠고, 화려한 무늬를 자랑하며, 강하지만 아름답고, 날카롭지만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그려보리라.... 여러 장 사진을 찍어 두었다.
초보자들은 보통 꽃, 나무, 정물, 풍경을 그리는데 갑옷이라니? 스케치를 해가자 보는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한 듯 보였다. 첫 번째 시도는 앞에서 본 전신갑옷의 모습이었다.
갑옷의 구도를 잡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람이 입는 옷이기에 인체의 비율도 생각해 보며 스케치를 했다. 관건은 그 오묘한 금속의 빛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블루, 그린, 옐로 수채화 색연필로 그리다가 수채화 물감을 얹었다. 그래도 반짝이는 금속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오일파스텔로 옅은 색을 더해보기도 했다. 쓰지 않는 반짝이 아이섀도까지 발라보았으나 색이 깨끗하기가 않았다. 정교한 조각문양은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선생님 도움을 받아 세밀화펜으로 장식을 더했다.
바탕은 투명해 보이는 갑옷과 대조적으로 유화느낌의 아크릴물감으로 얹기로 했다. 화사한 기분을 한껏 내기 위해, 핑크와 그레이를 골랐다.
유려한 갑옷이 정체를 드러냈다. 짝다리를 하고 선 갑옷이 기분 좋게 한쪽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뻥 찰 것만 같았다!
성경을 사랑하고, 옷을 사랑하는 나에게 '말씀의 전신갑주'는 마치 세상 수많은 단어들 중 나를 위해 주어진 단어와 같이 느껴졌다. 그러니 그리고 싶었다. 그것도 잘....
초보자로서 스킬에 자신이 없으니, 화구 가방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재료를 이리저리 써가며, 선생님과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며, 며칠 동안 그림과 씨름을 했다. 그리는 대상의 의미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그저 그렇게 대강하고 말 수는 없었다.
재주가 모자라도 마음이 간절하면, 그 마음이 그림을 그리겠지....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전신갑주' 그림이 탄생됐다. 초보자의 작품으로선 그다지 나쁘지 않아, 첫 책을 내면서 삽화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첫 번째 그림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한, 이 모양, 저 모양의 갑옷을 원 없이 그려보기로 마음먹었기에 나만의 시리즈의 첫 발을 내디딘 듯하다.
보통은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도 주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누구든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내 안의 갈망, 나를 끓어 당기는 것들에 대해 늘 생각하고 기록해 두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