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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립니다

애플파이와 아이스크림

by 블루비얀코

빵과 커피- 내 인생 가장 큰 탐닉의 대상이자 그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상. 어느 동네에 가도 첫 번째로 찾는 건 맛있는 빵집. 습관적으로 먹는 빵과 커피가 속을 쓰리게 만들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어도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먼저 책에도 빵과 커피와의 사투에 대해 글을 썼더니 빵과 커피를 끊었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답은 늘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요?"


그림을 그리며 예쁜 색에 끌려 이런저런 소품들을 사는 빈도가 줄었기에 이 원리를 빵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빵을 그리다 보면 빵을 적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먹는 게 아니고 그리는 거니 살찌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장 맛있어 보이는 빵을 고르자!


극강의 고소함과 단맛의 조화가 느껴지는 노릇노릇 구워진 애플파이. 그 위에 올려진 커다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고 있는 이미지. 파이가 담긴 토끼가 그려진 예쁜 도자기 접시도 입맛을 돋구워주는 듯 보였다.


이거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파이껍질의 색이 브라운부터 미색까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그냥 노란빛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관찰하고, 상상하고, 표현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애플파이에 대한 내 감각적 기대치가 높아지는 듯하다. 웬만한 패스트푸드점 애플파이로는 만족이 안될 듯싶었다.


좋지 않은 습관을 끊어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대상에 대한 감각의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란 게 간사해서 한번 맛있는 거에 길들이면 맛없는 거 먹기가 어렵다. 그런 나의 간사한 감각을 이용해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것이 몸을 위하는 길일 거다.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두 주간에 걸쳐 들여다보다 보니 웬만한 베이커리에 전시된 빵들이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성공이다.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실험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관찰하다 보니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그림 그리며 이런 실험을 하는 이는 나밖에 없지 않을까?


엉뚱한 내가 좋다! 그게 나니까.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그리기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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