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 유리멘털에 맷집이 생기다
유진피터슨 목사의 책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고 난 후, 사랑에 빠져버린 물총새.
길고 단단해 보이는 부리의 모양, 등 쪽 파란 깃털과 배의 주황색의 조화가 화려하지만, 그것보다 더 내 마음을 잡는 건 물속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물총새의 목표를 향한 집중력과 기개다.
물총새를 제대로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 도요새를 그리는 작가도 있는데 나는 물총새작가가 돼 보는 거지 모.
인스타그램 속 다양한 물총새의 사진들을 찾아보던 중, 한 녀석이 마음에 훅하고 들어온다. 풍성한 깃털과 맑은 눈, 하늘로 부리를 치켜둔 모습이 마치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늠름한 공군장교와 같은 모습을 한 녀석이었다.
작은 스케치북에 연습을 먼저 시도해 본다. 구도는 잘 잡았는데 새의 깃털의 구조와 색을 표현하는 게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마음이 급해져 밝은 부분까지 진한 터치를 해버리고 말았다.
급하면 망하는 거란 걸 안다.
수채화로 시작했다가 이내 오일파스텔을 집어 들었다. 오일파스텔은 명확함을 주지만 너무 많이 쓰면 그림이 탁해진다.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연습이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자.
화판에 새로 종이를 붙이고 스케치부터 시작한다. 깃털을 어떻게 표현할지, 이 붓 저 붓을 들고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한다. 공을 들여 깃털을 표현하고 색도 이리저리 섞어 겨우겨우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낸다.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려면 배경을 어둡게 네거티브로 표현을 해야 하는데, 선과 면이 부드럽게 연결이 되지가 않는다. 이번엔 배경색이 진해져 버렸다.
'그렇게 공들였는데 또!'
모든 작품을 하는 과정 반드시 한 번은, 많은 경우 여러 번 망한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림을 찢어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고 붓을 내던져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붕괴된 멘털을 살짝 부여잡고, 뒤로 한발 물러나 숨을 고르고 버티다 보면, 그리고 약간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샌가 그림에 생명의 빛이 생겨나며 당당한 존재의 이유를 얻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 그 환희란.
영국의 배우 이안 맥켈런은 어떤 종류의 예술이라도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유명한 화가가 배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신을 관찰하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유리 같은 멘털의 체급이, 인내심이 조금씩 늘어감을 느낀다. 평생 살며 그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그림 속 물총새가 그렇게 나를 이끌어간다. 그런 물총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너 맘에 들 때까지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