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가끔은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 발견하곤 합니다.
많은 예가 있겠지만 제가 일상적으로 겪는 것은 바로 '인사'입니다.
수업을 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업무 때문에 혹은 볼일 때문에
교사들은 수시로 교무실을 나와야 합니다.
당연히 복도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뚫고 이리저리 다녀야 하죠.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교무실을 나서야 하는 업무는 가급적 공강시간을 선호합니다.
쉬는 시간의 복도는 온통 아이들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복도로 나가게 되면 저는 아이들과 인사하기 바쁘죠.
예쁘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거나 지나가는 많은 아이들의 마음을 냉정하게 지나칠 수는 없으니 까요.
그런데 저는 요즘 유독 한 아이와 자주 마주칩니다. 한쪽 귀에 피어싱을 하고 살짝 파마와 염색을 한 남학생이죠.
제가 가르치는 아이가 아니라서 어떤 아이인지는 몰랐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바이브가 있지 않겠습니까?
교사라면 그냥 아는 그런 바이브가 있죠.
마주하며 지나가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저를 지나쳐가는 그 아이를 보며,
한두 번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만
문제는 해도 너무 할 만큼 요즘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죠.
오늘도 역시나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서로 눈길이 정면에서 한참을 부딪혔는데도 그냥 지나가더군요.
오늘은 왠지 참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이 친구, 응, 너. 잠깐만 이리 와볼래? 너 몇 반이니? "
"저요? 저 1반인데요. 왜요?"
"그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그래, OO이구나. 샘이 할 말이 있어."
"네?"
"너랑 나랑 너무 자주 마주치는데 니가 인사를 안 해주니 샘도 할 수가 없다. 우리 인사 좀 하고 지내는 게 어떠니?"
"앗! 네.. 네. 안녕..하세요..?"
"응, 난 안녕해. 너도 안녕하자. 앞으로는 인사 좀 하고 다정하게 살자. 악수!"
"넵!"
어색하게 다가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조심스러워하던 그 힙한 분은
이렇게 저와 진하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기로 했답니다.
영어 단어 progress는 기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기본적 의미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해서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progress가 보인다는 것은 그가 발전하고 향상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좋은 의미죠.
그 아이는 오전에 그렇게 마주친 후에도 몇 번을 더 마주쳤답니다.
저의 정면으로 오다 저를 보고는 깜짝 놀라 인사를 하더군요.
한 번은 제 옆쪽으로 지나가다 저를 보더니 되돌아와서 인사를 하구요.
집에 가다가도 친구들을 헤치고 저에게 와서 인사를 했죠.
귀여운 녀석.
이 약발이 언제까지 갈까 싶지만
인사 한번 안 했던 지난 모든 날에 받았을 인사를 오늘 하루에 전부 받고 나니
뭐 앞으로 또 인사가 줄어들더라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이대로 이 아이가 좋아져서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열심히 예의를 갖추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인사쟁이인 이 녀석 덕분에 괜스레 웃을 일이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지금 또 떠올리니 마음이 간질거리네요.
내일은 또 어떨까요?
살며시 기대를 해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