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nourishment - 항상 몸이 건강해야 해

by 무비 에세이스트 J


물질적인 면에서는 무엇이든 넘치도록 풍요로운 요즘입니다.

학교에 있으면 이러한 풍요로움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학교에서 신는 실내화는 죄다 크록스에

귀에는 에어팟을 손목에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양말 하나까지 브랜드를 신고 다니는 대다수의 아이들.


제가 일하는 지역도 1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비닐하우스에 흙길, 저수지가 있던 곳은

대단위 아파트와 상가, 호수 공원이 들어섰습니다.

물질적으로의 이러한 발전은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풍요로움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이

손에 쥐어지는 모든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 저는 급식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희 학교의 점심 급식은 1층 급식실에서 학년별로 이루어집니다.

한 학년 10개 반이 전부 들어가고도 약간 남을 정도의 여유 있는 공간에서

반별로 입장하여 급식을 먹게 되어있습니다.

급식지도는 학급 순서대로 출구와 퇴식구에 각각 담임 한 명씩,

그리고 나머지 담임들이 자신의 담임반을 관리하며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급식을 먹으러 내려오고

대체로 잘 먹는 편입니다.


이번 주 저는 퇴식 지도를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나갈 때 남은 음식을 잘 버리고 수저와 식판을 가지런히 쌓아두게 하는 겁니다.

당연히 아이들이 음식을 얼마나 먹고 버리는지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죠.

깨끗이 음식을 다 먹고 나가는 아이들이 많지만

거의 손도 안 대고 그대로 버리는 아이들도 많답니다.

왜 그렇게 안 먹었냐고 하면 대부분은 맛이 없다고 합니다. 입맛에 안 맞는다고요.

배가 안 고프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영어 단어 nourishment는 건강이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음식이나 양분을 의미합니다.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죠.


우리의 정신을 담아주는 것이 육체인 만큼

아이들이 간식이나 군것질거리보다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성장에 든든한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옛날 사람이 들려주는

근현대사처럼 들리나 봅니다.


거리에 나가면 아이들을 유혹하는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나니

어른들의 이야기가 공연한 밥 타령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음식을 안 먹거나 조금만 먹는 아이들 틈에서

깨끗이 비우고 식판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이쁜이들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을 해주었죠.

"야, 엄청 잘 먹었구나. 잘했어."

제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멋쩍어하면서도

보람 있는 일을 한 것 같은 얼굴로 급식실을 빠져나갔습니다.

밥을 강요할 수는 없죠.

굶고 사는 시대도 아니니까요.

다만,

한 끼 식사에 오르는 그 다양한 음식들은

먼 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의 결과에서 시작되어

여러 단계를 거쳐 아이들의 식판에 올랐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밥을 가지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밥 자체가 아니라,

완성된 식탁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 관련된 사람들의 땀방울에 대해 말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인문학적 관점이겠죠.

다음 주부터는 급식지도가 바뀌니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네요.


언젠가는 다 자란 우리 아이들과 산책을 할 수도 있겠죠?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formation -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