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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13. 2023

밀가루 끊기 4주차 효과

밀가루를 끊은 지 한 달이 되었다. 혈액검사를 하거나 인바디를 측정한 건 아니라서 비포, 애프터를 수치로 얘기하긴 어렵다. 그냥 내가 체감하는 것들만 기록 차원에서 남겨보려고 한다.


1) 체중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밀가루만 먹지 않을 뿐 먹는 양을 줄인 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2) 뱃살

뱃살은 줄었다. 유니폼을 입을 때 옆구리 군살이 줄어든 걸 확 느낀다. 영어 잘하는 남편의 경우를 보자. 남편은 마흔 넘으면서 배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저 배는 언제가 분명히 터진다 터진다 장담했는데 밀가루 끊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해진 게 눈에 보인다. 남편 본인은 얼굴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것 같지 않아? 않아. 다시 턱선 날카로워진 거 안보여? 안보여. 샤프한 느낌 모르겠어? 모르겠어.


3) 피부

피부도 약간 좋아진 것 같다. 불규칙한 비행 스케쥴 때문에 구내염이 자주 생기곤 했는데 그것도 줄어들었다.


4) 소화장애

2주차 때와 마찬가지로 원활한 배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내 몸에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궁금해 <생로병사의 비밀>에 '밀가루 끊기 3주 프로젝트' 편을 시청했다. 라면, 국수, 떡볶이, 짜장면, 빵 같은(아유 이름만 적어봤는데 침이 고인다) 음식을 매일 한 끼 이상 먹는 사람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전 검진 결과에서 공통적으로 복부 내장지방 수치가 높았고, 공복 혈당 수치도 높았다.


3주 후 인바디를 측정했는데 다들 나처럼 체중 변화는 없었지만 뱃살이 줄었다. 한 여성 출연자는 특별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체지방이 1kg 줄었고 그만큼 근육량은 1kg 늘기도 했다. 삼겹살 5인분에 해당하는 지방들이 근육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것도 3주만에.


혈액 검사 결과도 대체로 비슷했다. 공복혈당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 간 수치 등등이 모두 좋아졌다. 방송에서 경희의료원 이상열 교수는 밀가루를 먹지 않는 것만으로 약을 복용한 것 못지 않은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4주 동안 밀가루를 전혀 안 먹은 건 아니다. 함정에 된통 빠진 적이 있다. 술 좋아하는 남편과 살다보니 어쩌다 과음을 하는 날이 있는데 3주차 때 남편도 나도 도저히 국 끓일 힘이 없어 해장으로 집 앞에 있는 쌀국수집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쌀국수를 먹고 남편은 밀가루 끊고 사라졌던 설사를 이튿날까지 했다. 나도 얹힌 것처럼 속이 불편하고 더부룩했는데 우리는 그게 과음 혹은 쌀국수에 곁들여 먹은 매운 소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쌀국수에 있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시중 음식점에서 파는 쌀국수의 면은 100% 쌀이 아니라고 한다. 현행법상 쌀이 일정량 포함되면 쌀국수라고 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쌀 함량이 적게는 10% 많아봐야 30,4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쌀국수인 줄 알고 먹은 게 사실은 '쌀맛' 밀가루 국수였던 것이다.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밀가루를 먹고 싶다는 욕망과 싸우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밀가루 없는 식재료를 고르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가령 우리 부부는 라면이나 국수 대신 메밀면을 먹곤 하는데 이것도 원재료명을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쌀국수처럼 '메밀맛' 밀가루인 경우가 다반사다. 어묵, 소세지, 고추장, 간장에도 대부분 밀가루가 들어간다. 밀가루는 다른 재료들과 잘 섞이고 워낙 싸기 때문에 식품회사들은 원재료는 줄이고 밀가루 함량은 점점 높이는 것 같다.


서울 한복판에서 밀가루를 안 먹고 산다는 건 마치 거대 식품회사와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가면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밀가루가 외친다. 나 어디 숨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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