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다.
"국내선이야? 국제선이야?"
내 기억에 대한항공은 2014년까지는 국내선 전담 승무원을 채용했는데 그 이후로는 국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채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한테 국내선인지 국제선인지를 왜 자꾸 캐묻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비유하자면 연O대 다닌다고 하면 신촌 캠퍼스인지 원주 캠퍼스인지 궁금해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질문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국내선과 국제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그 고정관념을 빨리 나한테 적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요새는 그런 구분 없어요."라고 답했는데 경험상 상대방은 그런 애매한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면 불필요한 대화가 길어지기만 한다. 그래서 나이가 좀 있는 어르신들이 물으면 그냥 "국제선이에요."라고 답한다.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미세하게 "오~~"하는 게 느껴진다. 연O대 다닌다고 했는데 신촌 캠퍼스라고 하면 "오~"하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뭐든지 빨리 판단하려고 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이런 경향을 '인지적 구두쇠'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의 뇌는 대충 빨리 판단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혈액형으로 성향을 예단하고 MBTI가 유행하는 이유도 다 우리 뇌가 게을러서인 것이다.
나 역시 고정관념과 편견의 총체적 그 무엇이다. 남편을 대학 때 만났다. 첫 만남에서 남편이 데이트 비용을 계산했는데 지갑에 막 허연 수표가 여러 장 보였다. 대학생이 뭔 돈이 저리 많나 싶었는데 또 집은 강남이란다. 처음에는 인상이 너무 싸나워 보인다 싶었는데 찬찬히 뜯어보니 싸납다기보다는 샤프하고 세련된 것 같네,라고 정신 승리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SOLO> 보면서 직업, 학벌 같은 자기소개 이후 인상 평가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혀를 쯧쯧 차곤 했는데 20대 초반의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침 그날이 알바하고 월급 받는 날이었다. 강남에 산다고 다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데이트하는데 50원 들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