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수능, 토익, 입사시험, 승진시험 심지어 운전면허시험까지…
내 삶을 거쳐간 수많은 시험들,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안 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시험공부.
미루기에는 어딘가 스릴 넘치는 구석이 있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황홀함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시험 기간에는 공부만 아니면 뭐든 재밌다. 가장 재밌었던 책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읽은 소설들이다. 또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변이 칼같이 정리되어야만 비로소 펜을 들 수 있었다. 시험이 없을 때 엄마는 내 방을 보통 '돼지우리'라고 불렀다.
책 <미루기의 천재들>에 따르면 인류의 20%는 만성적으로 할 일을 미룬다. 미국 대학생의 1/3은 자신이 심각할 정도로 일을 미룬다고 응답했고 직장인도 근무 시간 중 하루 100분 가량을 그냥 밍기적거리며 보낸다고 고백했다.
찰스 다윈은 세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을 산산조각 낼 위대한 발견을 한 뒤 <진화론> 출간 미뤘는데 그 기간은 무려 20년이었다. 다윈이 출간을 미루며 한 행동은 따개비를 따는 것이었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헬리콥터나 잠수함, 로봇의 도안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당시 그를 고용했던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건 단 한 가지 뿐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 자가 약속한 날에 일을 마칠 것인가.
원래 이 포스팅은 어제 올리기로 마음먹었는데 미뤄졌다. 언젠가 나 같은 사람들을 모아 '미루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고 싶다. 공지는 아마 이렇게 올라갈 것이다.
[미루는 사람들 잠실 모임 -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할 일만 아니면 뭐든지 하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지난 16년 동안 miss flight 한 번 없었으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