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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Nov 16. 2019

누구도 자유롭지 않는 우울증, 중년의 위기..

읽고, 쓰고, 걸으며.. 인생의 힘으로 만드는 법

열심히 100미터 계주를 뛰듯 2~30대를 보냈다. 나름 회사에서도, 가정생활도, 완벽하진 않지만 소기의 성과도 이루었다. 그렇게 맞은 40대, 조금씩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일에 대한 열정도 심드렁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에서 아무리 열정을 쏟아도 언젠가 더 쌩쌩한 부품으로 교체될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느 날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전쯤, 30대 초반의 호주 아가씨가 팀에 조인했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해 오고 있었고, 이 친구는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처음 일을 해본다고 했다. 참하고 착한 친구였고, 그녀의 멘토가 되어 그녀가 팀에 적응하도록 열과 성을 다해 도왔다. 그렇게 그녀도 나도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툭! 소식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평범했던 아침, 출근하여 열어본 내 메일함으로…


“00일을 기점으로 Lana Montgomery (내가 멘토링 해준 그녀의 이름이다)를 아시아 리전 매니저로 임명합니다”


긴 영어 메일이었지만, 요지는 10살 어린 그녀가 내 매니저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40살 중반을 달려가는 내가 30살 초반의 어린 친구에게 메니징을 받는다니…. 그것도 내가 가르친 친구가… 그동안 고성과자로 늘 칭찬을 해준 건 뭐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나이가 많으니 나가라는 건가? 나가면 나는 뭘 하지? 내 전문성은 무엇이지? 어느 회사로 옮겨야 하지? 아직 어린 두 아이 딸린 엄마를 달가워할 회사가 있긴 한가? 그걸 다 떠나서 나는 누구지? 내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이지? 그때 마침,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 교육 문제, 주거 문제, 경제적인 문제, 부부 문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문제로 다가왔다.


끝도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이 많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밤새 뜬눈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낮에는 멍~해진다. 멍하게 있다 다시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고 나면 기력이 급격히 쇄 한다. 쇄 한 기력에 다시 잠을 자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면, 드디어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나는 그때 평생 처음 우울증을 경험했다. 몇 날 며칠을 끊임없는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밖으로 보기엔, 안정된 가족이 있고 이웃도 있고, 직장도 있었지만 나는, 내 내면은 지독히 고독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내가 가진 고민에 온전히 동화되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당시에는 찾지 못했다. 군중 속의 고독, 딱 그 느낌이었다.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 심리적인 변화여서 사실, 주변 가족들이 더 당황해했다. 처음에는 위로를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생각보다 오래가니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는 서운했다. 더 악화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신과를 찾아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전문 상담사를 갖춘 병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야 했다. 가족의 도움으로 건강의 회복을 제일 먼저 하기로 하고 한의원을 다녔다. 삶의 연륜이 있으신 한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도 도움이 되는 걸 느꼈다.


그동안 한 번도 안 쉬고 일을 하신 거예요? 아이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게다가 아이도 둘이나 키우면서…. 많이 힘드셨겠네요. 지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어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아, 내가 우울증이 걸린 건 잘못된 게 아니구나. 일단, 희망이 조금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한 내 내면의 질문에 답을 못 내려 답답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일을 하나? 마침, 당시 내 주변에는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매우 적었다. 모두 전업 주부로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는 것은 남자가, 아이를 교육시키고 가정을 돌보는 것은 여자가로 평화롭게 구분 짓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해법이 있는데,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지? 우리 남편이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오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이 들자, 남편이 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껏 내가 죽어라 일을 해온 이유라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온 내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때, 책 하나를 만난다. 김형석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의 ‘100년을 살아보니’였다. 인생의 하반기를 고민하는 나에게 그의 인생 100년이 왠지 모를 길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그는 나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한마디로…..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다


일하며, 아이 키우며 아등바등 살다가 10살 어린 쌩쌩한 친구에게 밀려 방황하는 나였다. 이것저것 모두 잘해 내려다 아이도, 집안 일도, 심지어 회사 일도 모두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나였다.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 이후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그때, 이 한마디가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내 고생은 내 가족과 그리고, 나의 노동으로 인해 혜택을 받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했던 것이고, 그래서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고…. 그리고, 언제까지 일지 모를 내 삶도 그러한 사랑을 위해 기꺼이 고생해도 된다고, 왜냐하면 그게 바로 인생의 참 행복이기 때문에….


드디어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원하지 않지만 의례히 해오던 모든 것에 과감히 ‘굿바이’를 외쳤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했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산 옆으로 과감히 이사했다. 수시로 산에 가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탄하고 행복해했다. 내가 굳이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얼추 내 감정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오랜 염원, 글쓰기를 들추어낸다. 고독하고 힘든 내 10대 시절, 나를 위로해주었던 일기 쓰는 시간이 그리웠고, 그렇게 나는 쓰기를 결심한다. 나와 방황하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글쓰기를 위한 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제가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를 집필하고 출간하기까지의 여정을 차곡차곡 정리해 보려 합니다. 누군가 마음속에 소중한 책 출판의 꿈이 있다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시작이 중년에 겪은 우울증이라니... 결국 우울증도 신이 주신 선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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