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노동자를 위한 두 번째 뇌

나만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by 박소영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해리는 펜시브라는 물건을 알게 된다. 펜시브는 호그와트의 교장인 덤블도어가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저장하기 위해 쓰는 은쟁반같이 생긴 것으로, 덤블도어는 펜시브를 씀으로써 자신이 더 명료하게 사건을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Dumbledore: "I use the Pensieve. One simply siphons the excess thoughts from one's mind, pours them into the basin, and examines them at one's leisure. It becomes easier to spot patterns and links, you understand, when they are in this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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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생각이 넘쳐흐르는 덤블도어를 도와주는 펜시브

최근 읽은 책 Building a Second Brain 에서 저자인 티아고 포르테는 현대의 지식노동자가 어떻게 자신을 위한 맞춤형 펜시브를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포르테는 이를 '두 번째 뇌'라고 부른다.


우리의 뇌는 70억년의 시간에 걸쳐 진화를 거듭했다. 30만년 전, 현재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후로도 뇌의 크기와 구조는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3만 5천년 전 즈음에는 얼추 현대인과 비슷한 버전이 되었다 (The evolution of modern human brain shape, Science Advances, 2018). 그러나 진화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문명이 발전했고, 기술의 발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2022년 인간의 뇌는 유례없는 정보의 범람 속에서 살아간다. UCSD 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이 매일 노출되는 (업무와 관련 없는) 미디어의 양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매해 5.4% 증가하여 2008년 기준으로 하루에 약 34gb 에 달한다. 이 연구는 티아고 포르테의 책에서 언급된 바 있는데, 사실 처음 34gb 라는 숫자를 들었을때 '이게 많은건가?' 싶었다. 인간의 뇌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양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한 건 현대인이 노출되는 미디어의 양이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다. 2008년 이후 폭발적으로 많아졌을 것이 틀림없을 수많은 온라인 콘텐츠를 생각하면 2022년 오늘, 인간의 뇌가 처리하기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다는 주장은 합당한 듯 하다.


그렇기에 저자인 티아고 포르테는 뇌를 도와줄 수 있는 잘 만든 시스템, 즉 두 번째 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보를 요약하고 분류해서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꺼내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우리는 훨씬 가벼워진 뇌로 창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적용'이다. 티아고 포르테는 자신의 삶에 직접 적용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리 진실되고 유용해보이는 정보라도 결국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두 번째 뇌의 목적은 내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기 좋게 압축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읽은 바를 토대로 나는 기존의 Notion 폴더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순서로 Inbox 를 비워나갔다.


1. 유용해보이는, 혹은 재밌어 보이는 정보를 알게 되면 일단 Inbox 폴더에 모아둔다. 이렇게 쌓인 정보는 나만을 위한 맞춤형 뉴스레터가 된다.

2. 시간이 날 때마다 Inbox 에 있는 정보 중 지금 알아보고 싶은 내용을 꺼내서 본다. 짧은 기사일수도, 테드 강연일 수도 있고, 책일수도 있다. 보면서 흥미로운 부분을 기록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기록을 하다보니 결국 (1) 지금 내가 고민하는 바를 해결해줄 실마리 혹은 (2) 당장 어디 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재미있는 내용 중 하나였다.

3. 정보를 1차로 압축하면서 분류를 해둔다. 어차피 분류에 정답은 없어 보였고, 뭐든 over-engineering 하다가 결과가 안좋았던 경우를 많이 알기에 일단 책에서 추천하는 'PARA' 분류법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는 Projects, Areas, Resources, Archives 의 약자로 새로운 정보를 다음의 4가지 카테고리 중 하나에 넣는 방식이다.

P: Projects - 기간이 정해져있는 프로젝트 (예: 졸업논문)

A: Areas (of responsibility) - 꾸준히 잘해야 하는 분야 (예: 가족과의 관계, 재테크, 커리어)

R: Resources - 관심사 (예: 미학, 여행, 맛있는 커피원두)

A: Archives - 종료되었거나 더이상 나와 관련이 없는 Project, Area 혹은 Resource 를 아카이브하는 곳 (예: 런칭완료한 프로젝트, 관심이 사라진 분야)


예를 들어, Inbox 에 있는 아이템을 다 읽고 나에게 와닿는 내용을 요약한 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Effective 1:1 은 Areas → 커리어 폴더에, Why build in web3 는 Resources → 블록체인 폴더에, 그리고 Ego is the Enemy 는 Resources → 자기계발 폴더에 넣는다.


가끔 새로운 정보를 Area 와 Resources 중 어느 폴더에 넣어야할지 고민할 때가 있는데,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두 카테고리를 합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독 자주 열어보게 되는 정보가 있다면, 열어볼 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밑줄치고 요약을 하라고 저자인 포르테는 권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에 걸쳐 정보가 농축되면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유독 여러 번 찾아본 정보라면 앞서 말한 (1) 고민에 대한 실마리일 수도 있지만 (2) 나도 몰랐던 나의 관심사일수도 있다.


책에서 추천하는 대로 시작해본 이 시스템은 내가 잘 못하는 일 (분류, 완전한 기억,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 진행하기) 을 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직접 요약한 내용이 아니면 분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분류한 내용을 꺼내어 보는데도 부담이 없다. 또 책을 집어들기 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는데, 나의 관심사를 알아내려고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보를 내가 계속 궁금해하는지 테스트해보면 된다. 손때가 탄 책장처럼, 다녀간 흔적이 많이 남은 정보를 모아보면 나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