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모닝 루틴

아침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by 박소영

좋아하는 유튜버인 이연님의 모닝 루틴에 관한 영상을 보고 영감을 얻은 나는 그날로 아침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어제 누굴 만났고 뭘 먹었는지보다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다. 평상시에도 마음이 복잡할 땐 글로 적어 내려 가는 걸 좋아하던 나는, 글을 쓰며 시작하는 아침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글 쓸 생각에 신나서 잠이 좀 더 잘 깨는 효과도 있었다.


보통 글쓰기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왠지 모를 벽을 느낀다. 나 또한 주로 과제로 글을 쓴 기억밖에 없기에 글쓰기 하면 설렘보다는 의무감을 더 많이 느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으려 쓴 글은 온전히 나를 위할 수 없고, 더군다나 과제용 글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잘 써야 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에 (독자를 설득한다던가 하는) 신날 수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침에 쓰는 글은 보여줄 사람이 없는 온전히 나의 마음속을 정리하고 치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도구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점점 해야 하는 일의 크기가 커지고, 나를 찾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면서 정작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러기에 출근시간 전,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조용한 아침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알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을 쓴다.

'『앨저넌에게 꽃을』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힘. 좀 슬픔.'

'어떻게 하면 잘 쉬는 거지? 잘 쉬는 법을 누가 알고 있을까? Reddit에 찾아볼까? 책이 있겠지? 잘 쉬는 법 전문가도 있나? 열심히 일하는 법은 다들 궁금해하는데.. 효율적으로 쉬는 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듯.'

'이틀 연달아 마술쇼를 보러 갔는데 결이 좀 달랐음. 그저께 본 Matt Franco는 "하하하 관객 여러분 즐기세요!" 이런 느낌이었다면 어제 본 Shin Lim 쇼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마술 실력을 갈고닦아서 지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을 받음. '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팔 굽혀 펴기 괜찮은 습관인 듯. 부담감이 하나도 없고 막상 1회 하면 시작한 김에 스트레칭이라도 더 하게 됨.'


별 내용 없는 문장도 많고, 문장의 형태가 아닌 것도 많다. 힘을 빼고 잠이 덜 깬 상태로 글을 쓰다 보면 저 아래 무의식의 바다에서 숨을 쉬러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고래처럼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나를 걱정시키는 일이라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생각 등.


아침에 일기 쓰는 루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방법을 창시한 줄리아 캐머런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로 유명한)의 책『아티스트 웨이』도 찾아 읽었다. 그는 책에서 아침에 쓰는 일기인 '모닝 페이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닝 페이지는 전조등을 켜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앞쪽을 더 멀리,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물이 명확히 드러나고 어려움을 피해 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장애물 못지않게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도 커진다.

동의한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수다 떨 때, '너랑 얘기하니까 당장 바뀐 건 없어도 생각이 정리돼서 좋다' 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머릿속 어딘가를 부유하는 크고 작은 생각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스스로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글로 표현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만으로도, 그대로 두었다면 나를 방해했을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기도 했다 (1570번이나 인용된 논문 Putting Feelings Into Words 에서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만으로도 원인 모를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테라피적인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되어 아침시간이 즐겁고,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어떤 일이던 더 확신을 가지고 임할 수 있게 된다. 아침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서야 30여 년 가까이 살면서도 시간 들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본 시간이 잘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내 편일 수밖에 없는 내가 그 어떤 괴이한 제안을 해도 고개를 끄덕여주며 경청하는 과정은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복잡한 머릿속 실타래를 풀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침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다.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자꾸 잡생각이 난다거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를 탐색하는 방법으로 시도해볼 만하다. 삶이 평안하다면, 더 단단한 삶을 위하여 매일 아침 스스로를 세팅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