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을 줄이는 선택이 가능해?
숫자는 많은 사람의 삶을 규정짓는다. 타임 차지, 성과 보수, 연봉과 지출 내역 같은 항목들은 얼마나 일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측정하고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쓰인다. 수치로 환산된 삶은 효율적이고 명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삶은 단순히 계량 가능한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숫자가 높을수록 성공에 가깝다고 믿게 되는 구조 속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좀처럼 되묻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구조 안에서 살아왔고, 그 구조 안에서 꽤 잘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성실하게 움직였고, 나의 존재는 숫자라는 언어로 무리 없이 번역되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이 바뀌면서, 함께 바뀌는 것들이 있었다. 이직을 하며 수입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자격과 직함도 내려놓았다. 자연스럽게 씀씀이를 바꿔야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선택하고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수동적으로 변화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단호하게 소비의 구조부터 정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모든 신용카드를 없앴다. 할부를 포함해, 남아 있던 카드 빚을 전부 청산했다.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끌어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여기 있는 삶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부끄럽게도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조차 깊이 고민해본 적 없었지만, 처음으로 총수입과 예상 지출을 계산하고, 6개월 동안의 소비 패턴을 분석했다. 적정한 식비와 교통비, 소소한 취향까지 포함해,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출 구조를 설계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지금껏 줄여본 적 없는 소비 수준을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아쉬움이 밀려오지 않을까, 혹은 억제된 감정들이 예상치 못한 불편함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사실 그것은 하나의 실험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조용한 베팅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에 걸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먹는 것'과 '가는 곳'이었다. 조금은 덜 화려한 식당, 조금은 덜 번쩍이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조금은 더 따뜻한 사람들이 내 일상을 채워갔다.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고, 오히려 약간 젊어진 듯한 착각도 들었다. 소비를 줄였다고 해서 풍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분명한 기준이 생겼고, 충동보다 의도가 많은 삶이 되었다.
그제야,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내게 가볍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감각적인 동의에 불과했던 문장이, 이제는 생활로부터 입증된 신념이 되었다. 대단히 풍족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가 "너는 부족함 없이 커서 그런 거야. 아쉬워본 적이 없잖아"라고 말했을 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나는 해봤고, 감당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증명했다"고.
물론, 돈은 여전히 중요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함이 내 삶을 주도하지는 않는다. 돈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지, 삶을 정의해주는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소비가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무엇을 샀는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가 곧 나의 생활을,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내 삶이 소비로 번역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감각과 어떤 밀도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가 나를 설명해주기를 원한다.
소득은 줄었지만, 삶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주말의 감각이 돌아왔고, 오후의 빛은 긴 여백처럼 느껴졌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가격이 아니라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삶은 여전히 명확해지고 있었고, 나는 그 명료함 속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불필요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것은 궁핍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