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에 못한다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나이를 이야기할 때마다 늦음을 말한다. 이제는 어렵다, 이제는 늦었다, 그 나이에 뭘 하겠느냐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반드시 늙어간다는 뜻은 아니다. 삶의 가능성은 숫자로 닫히지 않는다.
나는 남들이 이십대에 당연히 겪는다고 여겼던 일들을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하나둘 시작했다. 클럽에 가보는 것도, 밤새 술을 마시는 것도, 진로 고민을 하며 방황하거나 가슴 졸이며 연애를 하는 것도, 모두. 누군가는 ‘늦바람이 났다’며 웃었고, 나 스스로도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일은, 결국 언제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로 나는 이십대에 남들이 안 하던 것을 했다. 대학에서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각종 책을 읽고 세미나와 독서클럽에 참여했다가, 로스쿨에 진학했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그리고 딸을 낳았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 분명 그 시간에 다른 경험을 하며 삶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삼십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링 스피커를 사고, 룸튜닝까지 하며 홈스튜디오를 꾸몄다. 그렇게 시작한 음악은 싱글 앨범으로 이어졌고, 작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어느 날은 외주를 받아 BGM 작업을 해 100만 원이라는 돈을 받고, 내 이름을 걸고 결과물을 남기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에는 헬스에 빠져 10개월동안 하루 두 번씩 헬스장에 출근하듯 다녔다. 머리를 쓰는 일에만 신경 쓰던 삶에서 벗어나 식단을 관리하고, 에너지를 채우자마자 쏟아내어 몸을 만드는 일에 물두했다. 결국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적절한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나 있었지만, 그 시간은 누구보다 나를 살아 있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큰 전환을 선택했다. 변호사의 길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스물세 살 무렵, 다른 전공을 고민했지만 ‘이제 너무 늦었다’고 스스로 단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법대를 자퇴하고 공대에 가기로 했어도 전혀 늦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는 항상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주지만, 진짜 늦음을 결정짓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태도다.
어떤 사람은 스무 살에도 이미 늙고, 어떤 사람은 마흔이 넘어도 새로워진다. 경험의 양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태도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 앞으로도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틀리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틀리고, 더 자주 묻고, 더 자주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젊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