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은 좋아하는 게 뭐예요?”
친하게 지내던 의뢰인이 재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툭 던진 말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인사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럴듯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멈췄고, 결국 애매한 웃음만 남겼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왜 말을 못했을까? 대답은 너무 많았는데, 정작 진짜는 없었던 걸까?
몇 날 며칠을 곱씹었다.
여행이라고 말할걸, 음악이라고 했으면 좋았을까, 와인이나 독서나 그럴듯한 취향 하나쯤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심으로 몰랐다는 것을.
스무 살 이후, 나는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해왔다.
하지만 그건 자유롭고 열린 고민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법대에 있었고, 변호사가 될 것이었고, 그 사실은 언제나 고정값이었다.
고민은 늘 그 안에서만 작동했다.
나는 왜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보다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했고,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내 삶을 설계했다.
인권, 정의,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들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가져다 쓴 단어였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스스로 꽤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타인의 눈에도, 나의 계획표 안에서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 모든 성취 위에 조용히 균열을 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어떤 맥주를 좋아하지? 라거인가 에일인가, 클래식 음악이라면 어떤 작곡가의 곡에 마음이 끌릴까, 악기 소리 중에서는 첼로가 좋을까 기타가 좋을까, 오페라보다 뮤지컬이 더 재밌는가, 전자음악이라면 딥하우스와 테크하우스 중 나는 어디에 더 반응하는가.
그렇게 디깅을 시작하고, 취향을 기록하고, 내 감각을 구체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탐색이었지만, 그것은 나라는 사람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이 여정에서 나는 ‘일’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전공을 하고, 학위를 받고, 자격증을 따는 것이 일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일을 한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실제로 ‘하는 것’이구나.
말이 아니라, 타이틀이 아니라, 행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건 자격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 단순한 명제가 나를 통과하며 강하게 울렸다.
나는 그때부터 자격명 대신 ‘나는 ---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나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격증과 타이틀로만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서와 학교 브랜드를 내세우지만, 정작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사람들, 일의 본질보다는 껍데기에 집중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진짜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 그 행위로써 자기를 증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고용된 삶’에만 기대지 않기로.
내 삶의 고용주는 나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이제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퀘스트를 깨기보다, 나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며 길을 만드는 사람.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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