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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y 11. 2017

이제부터 미니멀리스트가 되겠어!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내내 집안을 치우고 정리했다. 일명 '미니멀리즘' 실천하기. 예전에 아들이 자기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말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이제는 내가 미니멀리즘 신봉자가 되어 버렸다.



시작은 이랬다. 요즘 나오는 책들이 궁금해서 뒤적거리던 중.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란 책이 딱 걸렸다. 지금 내 심정이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와 "살기로 했다'의 차이는 뭘까? 막연한 로망과 확실한 결단? 알고 보니 현재 예스 24 종합 베스트셀러 7위. 베스트셀러라는 명칭의 책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허나 마음이 끌리는 제목이라 미리보기로 책 내용을 훌어보았다. 일단 글보다도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치 법정 스님의 방을 연상케 하는 깨끗하고 단출한 방. 일단 가구와 짐이 거의 없다. 옷도 몇 벌 안 된다. 성형외과 광고보다 더 극적인 비포  Maximalist 앤 애프터 Minimalist 사진들. 스님이 아니더라도 저런 생활이 가능한 거구나. 


배달되어온 책을 직접 읽어보니 역시 사진이 맘에 든다. 우리 집도 저랬으면 좋겠다. 배낭 하나로도 6개월을 살았는데 집에는 무언가가 너무 많다. 내가 법정스님 방처럼 단출한 집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 방바닥 위와 가구에 물건이 없어서 청소하기 쉬운 집, 나아가 청소할 필요가 없는 집? 


살림 중 가장 하기 힘들면서 동시에 하기 싫은 게 이 청소다. 콕 집어 말하자면 물걸레로 닦는 일이 그렇다. 나는 정리는 잘 하는 편이다. 이사를 가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정리를 해서 버릴 물건은 버리고 줄 물건은 주어 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레로 닦는 일은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른팔을 예전처럼 쓸 수 없어 그렇기도 하고, 아니 이건 핑계다. 그전부터 닦는 일을 싫어했으니까. 방바닥 닦는 것, 자잘한 물건들에 끼인 먼지 닦는 게 참 구찮다. 책장에 책을 깊숙이 꽂으면 남는 앞부분에 먼지 쌓이는 게 싫어서 책들을 모두 끝에 맞춰 꽂는다. 왜 책장을 책 크기에 딱 맞게 만들지 않는 걸까? 재료 낭비에 공간 낭비인데? 여행을 가도 기념품 따위는 거의 사지 않는다. 가져가야 어디 놓아두면 먼지 쌓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미니멀리스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집은 아홉 세대가 있는 빌라다. 두 달 전쯤 옆집이 새로 이사 왔는데 전셋값이 우리보다 무려 6천만 원이나 비싸다. 우리 집의 전세 기한은 올 12월. 1년 만에 6천이 올랐으니 12월이 되면 도대체 얼마나 더 오를 것인지... 그나마 이런 전세도 없어서 못 들어오는 지경이라니. 올 겨울 12월이 되면 전셋값을 올려주고 계속 살아야 할지 아님 가격이 맞는 더 작은 집을 알아봐야 할지, 그도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맘 같아서는 물론 집을 사고 싶지. 


이렇다 보니 자꾸 집에 관한 기사만 찾아보게 된다. 더불어 작은 집에서라도 충분히 살 수 있게 짐을 줄여야겠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참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 이전 집은 이 집보다 훨씬 넓은 집이었다. 예전부터 나는 살림이 느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니 큰 집이 너무 휑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평소 신념을 버리고 소파도 큰 거, 거실장도 큰 거를 샀더랬다. 물론 동화 속 공주처럼 그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줄 알았지. 2년 만에 또 이사할 줄 누가 알았나. 


이 집에서는 소파를 거실 베란다 창문 앞에 두었다. 전보다 좁다 보니 자리가 거기밖에 없더라. 문제는 소파가 너무 크기도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게다가 기다란 게 넓은 창을 가리니 답답하기도 하고. 맞은편 벽 하나를 가득 메운 책장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뭔가 조치가 필요해 라고 되뇌던 중 이 책을 읽고는 선뜻 결심을 해버렸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도 이제부터 미니멀리스트가 되겠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줄이는 거였다.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옷이지만 과감하게 더 추려 내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 살 빼면 입으려고 남겨둔 옷, 싼 값에 혹해서 샀으나 잘 안 입어지던 옷, 살 때는 예뻤지만 지금은 못 입는 다자인과 색깔의 옷, 예전에 항암 할 때 취미로 만든(그러나 지금은 어울리지 않아 못 쓰는) 모자들, 심지어 신혼 때 입던 20년이 된 올드한 정장까지. 그리고 산 지 1, 2년밖에 안 됐지만 사이즈가 커서 안 입고 싶은 옷들(요즘 옷이 대부분 루즈핏이라 키 작고 덩치 작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도 몽땅 꺼내 놓았다. 대부분은 재활용 박스로 들어갔고 나머지 쓸만한 옷들은 언니에게 주기로 했다(울 언니는 나보다 사이즈가 크다). 그랬더니 양말과 속옷들을 넣어두던 장식장 하나가 비어졌다. 그다음 남편에게도 안 입는 옷을 정리하게 했다.


이번엔 주방 차례. 아들도 유학가 있고 부부 둘만 있다 보니 그릇도 많이 필요 없다. 역시 원래 그릇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빼낼 게 있더라. 주로 쓰는 것들만 제외하고 여벌로 가지고 있던 유리잔, 접시들, 기타 용품들도 다 정리했다. 전기장판과 매트, 청국장 기계, 스텐 김치통은 엄마를 드리기로 했다. 


다음엔 책장 정리.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아끼던 책들을 떠나보내야 했으니까. 한 번 읽고는 더 이상 안 보는 책들은 대부분 끌려 나왔다. 추억용으로 간직했던 아들의 그림책,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흥미가 식은 책들도 불려 나왔다. 나에겐 여행책들이 가장 많았는데 아, 그것들은 아직까지는 버릴 수가 없었다. 책을 골라 집어 들었다가 다시 꼽기를 반복. 그래, 이 정도만 하자. 그런데도 총 다섯 개의 책장 중 하나를 비울 수 있었다. 쓸만한 청소년용 책들은 친구가 와서 가져갔고 나머지는 재활용으로 내놨다. 


물건들을 비우니 필요 없게 된 가구들이 남았다. 작은 장식장과 책장은 친구 소개로 젊은 부부가 들고 갔다. 안 쓰던 싸구려 테이블과 의자는 대문 밖에 내놓았더니 누군가가 가져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허투루 버리는 물건 없이 다들 주인을 잘 찾아간 것이다. 물건과 가구들이 제 갈 길을 가자 다시 집안을 정리해야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벽면을 가득 채웠던 책장 중 3분의 1을 장식장이 있던 안방으로 옮겼다. 나머지 책장은 복도 쪽 벽에 새로이 자리를 잡았다. 비어진 그곳에 소파가 들어갔다. 맞춘 것처럼 자리가 딱 맞는다. 거실 창을 가리던 소파가 자리를 옮기니 햇빛이 환하게 잘 들어온다. 식탁도 자리를 덜 차지하게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갑자기 집이 몇 평쯤 넓어진 느낌이다.


책에서처럼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찍어 놓을 걸!!! 종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다. 책에 나오는 수도승과 같은 집은 어림없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대만족이다! 거실은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서 더 넓고 시원해졌다. 소파도 유리창이 아닌 벽 쪽에 자리를 잡으니 훨씬 안정감이 있다. 


달라진 남편의 반응 좀 보소.


 " 또 무슨 책 하나 읽고 뭘 다 바꾸자는 거야? 귀찮게시리."


이랬던 사람이


 " 거 미니멀리즘, 괜챃네!"


요래요래 바뀌었다.^^


내 생각에 올해 나는 운이 좋은 거 같다, 헤헤. 집을 정리해도 물건들을 버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알다시피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누굴 주어야 하는데 내 맘처럼 알아서 가져가 주지는 않으니까. 요즘은 예전처럼 남이 쓰던 물건을 덥석 받아가지 않는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막상 소비 수준은 높은 편이다. 나는 돈 한 푼 안 들였는데 알아서 자기 갈 길을 가주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엔 아직 멀었지만 이렇게 시작을 했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삶의 불필요한 부분을 알아채고 그걸 잘라내는 작업이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가장 소중한 것을 간직하게 되는 것. 6개월 뒤쯤 또 한 번 집 정리를 할 생각이다. 분명 오늘 보지 못한 숨겨진 욕심을 또 찾아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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