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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2 - 다 계획이 있다

by 소율


일기 <2월 25일>


어제 엄마에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는 오늘 즉각 나타났다. 아침부터 엄마는 당신 집에 가겠다고 자꾸 가방을 집어 든다. 딸년이 마주앉아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지 할 일만 하고 도통 재미가 없었던 게다. 동생과 올케가 힘들어서 좀 쉬어야 하니 당장 가실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엄마 관심을 돌려야 한다. 평소 차타는 걸 좋아하시니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그런데 하필 코로나 정국이다. 나간 김에 외식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면 시간이 잘 갈 텐데. 할 수 없이 차 안에만 있어야겠다.


동네 근처를 30분 정도 도는데, 의외로 말이 없으시다. 즐겁지 않은 것이다. “엄마, 저기 안양까지 더 멀리 나갔다 올까?” 했는데 “됐다, 뭐 하러 자꾸 돌아다녀? 얼른 집에 가야 하는데.” 라며 서둔다. 여전히 머릿속이 당신 집에 갈 생각으로 가득하다! 나도 흥이 나질 않아 그만 (내)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새로 하고 돼지고기를 볶아 점심밥을 드렸다. 엄마를 보아 하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우적우적 딴 생각 중이시다.


“엄마, 무슨 생각하느라 그리 급해? 천천히 드세요.”

“내가 말이여,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뭘 하믄 내 한 몸 못 먹고 살겄냐? 시장에 가서 뭐라도 팔믄 되지. 근데 여긴 시장이 어디여?”


엄마의 사고는 장사를 해서 온 가족을 먹여 살렸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할머니가 되기 전의 팔팔했던 시절. 여든 둘 노인네가 맨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겠단다. 장사 안 한지가 언제인데, 인이 박힌 장사꾼 시절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자신이 있다. 지금이라고 못 할 게 뭐냐. 여덟 명의 대가족을 당신 손으로 벌어 먹이고 입혔다.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다. 예전처럼 서울 도매시장에서 뭐라도 떼어다가 길거리에서라도 팔면 된다. 장사로 먹고 산 세월이 몇 십 년인데 그깟 걸 못할 소냐. 근데 내가 뭐, 여든이 넘었다고? 나이 많아서 못한다고? 하긴 나이가 많긴 많구먼.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놀 수는 없잖여? 내가 맘만 먹으면 그깟 걸 못 할까봐?!


“내가 여기서 이러구 앉아 있음 뭐하냐? 나를 터미널에만 데려다 주믄 될 거 아니여. 터미널 가기만 하믄 충주 가는 차 하나 못 탈까봐? 얼른 가서 방도 알아보고, 시장에도 나가 보고. 내가 할 게 많어.”


사고력이 떨어지는 엄마가 자꾸 억지를 부리기 때문에 동생네는 한 번씩 난리가 난다. 한겨울에 툭 하면 외투도 없이 집 밖으로 나가려 하고(백 프로 길 잃어버림), 용돈 드린 거 어디다 떨궈 놓고 돈 한 푼 안 준다고 역정 내고(돈에 엄청 민감함)...... 기억은 자꾸 끊기고 세상일은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번에도 집 나가 혼자 살겠다고 소리치는 걸 언니가 달래서 모시고 왔다.


그동안 주로 엄마를 돌본 건 언니였다. 언니와 엄마는 찰떡궁합 모녀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관심은 일편단심 맏딸에게 쏠려있다. 언니 역시 엄마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언니 바라기 엄마는 우리 집에 있어도 틈만 나면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요 밖에 나갈 건데, 너 지금 올 수 있어?” 옆집 아줌마 부르듯 여상하게 말한다. 아이고야, 천진난만하기도 하시지.


엄마 집에서는 이렇게 심심하지 않다. 오전에는 노인정에 다녀오고 오후에는 요양보호사가 와서 목욕도 같이 가고 말동무를 해준다. 저녁 먹고 나면 일찍 취침, 하루가 수월하게 지나간다. 딸네 집에서는 엄마가 할 게 없다. 어쨌든 주말까지는 동생네에게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엄마는 낮잠도 자다가 좁은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내일은 집에 가야 한다고 열 번도 더 이야기했다. 그럭저럭 엄마와의 셋째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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