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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Jun 27. 2022

여덟 개의 창문을 열어놓고 제비 소리를 듣는다

제비집 명당


토요일이다. 25일, 장날이기도 했다. 아침에 얼른 가서 오일 전에 산 반바지를 긴 바지로 바꾸어 왔다. 떡볶이도 사 먹었구나. 오늘은 바람이 좋다. 하루 종일 시원하게 분다. 장마철이 맞나? 장마는 잠시 소강상태인가 봄. 집에 돌아와 커피 한 잔을 내려 얼음을 몇 개 띄웠다. 한여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못 먹는 체질이지만 시(원한)아(메리카노)는 즐긴다. 이런 날은 빨래를 말려야 해. 몇 개 되지 않지만 쾌속 코스로 세탁기를 돌려 바람에 널었다.



세탁기 쪽 테라스엔 이미 꽤 자란 새끼 제비들이 둥지에서 삐삐삐 재잘댄다. 부모는 연신 먹이를 물고 들락거린다. 나는 어제 닦아놓은 반대편 테라스를 내다보았다. 그런데 또 (부부로 보이는) 제비들이 자꾸 드나든다. 뭐지??? 아이고야, 이쪽 테라스 천장 구석에도 집을 짓고 있었다! 양 테라스마다 제비들의 불법 건축 발생. 집 주인인 내가 허락한 적이 없거늘, 이 집이 그리도 명당이더냐?


저쪽 부부는 이미 새끼들이 한참 자랐는데 이쪽 부부는 이제서야 둥지를 짓는다. 언제 알 낳고 언제 키울래? 이렇게 써놓곤 진짜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본 제비의 생태.


"건물이나 교량의 틈새에 둥지를 트는데, 보통 한 집에 1개의 둥지를 짓고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서 사용한다. 귀소성이 강해서 여러 해 동안 같은 지방에 돌아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어미 새는 약 5%, 새끼는 약 1%가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8일 동안 품고 부화한 지 20∼24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비 [barn swallow]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저쪽 제비 가족을 지켜본 결과, 새벽에 시끄럽지 않았다. 내가 창문을 닫고 자니까 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낮엔 엄청 재재거린다만. 상관이 없고요. 이쪽의 집 짓기도 내버려 둘 밖에. 우리 집엔 인수 합해서 세 가구가 사는 셈이다. 사람 가구 하나, 제비 가구 둘.


제비가 복을 물고 온다는 설은 둘째치고, 나의 새벽잠을 깨울까 봐 걱정했다. 불면증 환자에겐 잠이 곧 복입니다. 만약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제비라면 내겐 아무 소용없슈.


의외로 불편한 점은 제비집 아래에 엄청난 똥이 떨어진다는 것. 아마 현관이었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게다. 실내가 아닌 테라스라서 더러워진들 문제가 되진 않는다. 나는 박스를 접어 제비집 아래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박스만 치우면 간단히 오물 제거가 되겠지.



토요일, 제비는 새끼를 키우고 나는 집안에 앉아 바람을 쐰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죄다 열었다. 거실에 두 개, 주방에 두 개, 복도에 두 개, 방에 두 개, 총 여덟 개의 창문이 활짝 열렸다. 여름에도 항상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걸까? 겨울바람은 매서웠지만 여름 바람은 기특하다. 바람이 나무와 공기를 흔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역시 에어컨을 틀기엔 아까운 바람.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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