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못하는 자의 소극적인 바다 적응기 2편

코난 비치라고요? 아니 행원 바다로 할게요!

by 소율


첫 아쿠아 워킹 이후 거의 3주 만에 다시 바다에 갔다. 매일 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실이란 에효.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원고 수정 파일(베트남 여행 에세이)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2주일간 하루에 12시간씩 원고를 재수정했다. 간단히 끝날 것 같았던 작업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 재수정을 마치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 후에야 나는 물놀이를 대비할 수 있었다. 1순위 준비물은 튜브. 간편하게 쿠팡 로켓 와우로 주문하려고 했으나. 이미 살 사람은 다 샀는지 로켓 배송되는 게 없었다. 일반 배송은 1주일. 앓느니 죽지. 나는 이마트 제주점에 달려갔다. 튜브를 고르고 옆에 있던 에어 펌프까지 집어 왔다. 젖어도 상관없는 모자와 아쿠아슈즈, 물안경은 다이소에서, 워터프루프 선크림은 올리브 영에서 샀다. 이제야 모든 준비 완료.


아침 10시 반쯤 집을 나섰다. 구름이 가득해서 덜 뜨거웠다. 해변 주위의 공터에 주차를 하고 노란색 이마트 가방과 우산을 들었다. 차 안엔 수돗물을 담은 커다란 페트병이 들어있다. 샤워장이 없어 발 씻을 물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나는 빵빵하게 바람을 채운 튜브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주위의 사람들은 간혹 춥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수영복이 아니라 래시가드를 입어서인가? 무릎을 지나 가슴 정도 깊이까지 걸어가 튜브에 매달렸다. 두 손은 튜브 밖으로 걸치고 앞으로 몸을 띄웠다. 안정적이다. 튜브가 나를 지켜줄 거란 믿음에 공포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직 발이 바닥에 닿았다.


나는 일명 개헤엄(?)을 흉내 냈다. 겨드랑이로 단단하게 튜브를 끼고 팔을 허우적거렸다. 두 다리도 이리저리 첨벙거렸다. 오 재밌다! 튜브와 함께라면 나도 어엿한 '바다 인간'이 되는구나. 나는 특히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쭉 뻗어 번갈아 위아래로 흔들고 개구리 뒷다리처럼 마름모꼴로 물을 밀었다. 크크. 다리만 보면 전문 수영인 부럽지 않은 모양새로다. 나는 가짜 수영인 행세를 하면서 계속 발바닥을 확인했다. 나의 반경은 예상하시는 대로 발이 닿는 곳까지다.



남들은 우아하게 자유형 또는 배영을 즐겼다. 바닷속으로 잠수를 하기도 했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여기 물고기가 엄청 많아, 하하하! 빨리 일루와 봐!"


수경을 끼고 스노클링을 하던 사람이었다. 나도 그 물고기들을 보고 싶다아. 하지만 거긴 나에게 (발이 닿지 않는) 위험 구역이었다. 같은 바다에 있어도 나는 반쪽짜리 놀이꾼이구먼.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일행과 함께였다. 행원 바다 위에 떠있는 사람 중 혼자는 오직 나 하나. 못내 아쉬웠다. 본시 물놀이란 여럿이 해야 제맛이 아닌가 말이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서로 잡아주고 장난치고 젊은 부모가 아이들을 챙기고. 그런 모습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래 솔직히 부러웠다 엄청.


혼자 하는 제주살이의 외로움이란 이런 것. 그러나 어쩌랴. 혼자일지언정 재미나게 놀아야지. 나는 물놀이를 걷기 대신하는 운동인 셈 치기로 했다. 다리뿐이나마 열심히 버둥거렸다. 최대한 칼로리를 소모하자구. 한참 뒤 어깨가 뻐근했다. 하긴 내내 어깨로 튜브를 지탱하니까. 다음엔 머리를 뒤로 젖혀 튜브에 걸치고 둥둥 떠다녔다. 훨씬 편안하군. 얼굴이 직통으로 탈까 봐 걱정되긴 했지만.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힘들어지기 전에 그만 나와야겠다. 유방암 수술 후 1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나의 몸 님이란, 유리처럼 살살 다루어야 하는 존재이시다. 지치기 전에 멈춰야지 안 그러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체력이 방전된다. 다시 에너지를 채우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네.



바다에서 나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우와, 내가 그렇게 오래 놀았다니. 역시 튜브의 힘! 존경합니다, 튜브시여. 나는 오늘의 일등 공신 튜브 님을 햇빛 좋은 바위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마르고 계시오. 나는 사진을 좀 찍고 오겠소. 본업(놀이)에 집중하면 사실 사진은 잘 찍게 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몇 장만 박았다. 날이 잔뜩 흐려서 기분이 식기도 했고요.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과 엄마.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있는 사람들. 저 멀리 머리만 보이는 사람들. 여름의 제주 바다에서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만하면 행복에 가까웠다. 오늘의 물놀이는 여기서 끝! 짐을 챙겨 들고 차가 있는 쪽으로 나왔다. 도로가에 원피스와 스카프를 파는 트럭 두 대가 서있었다. 저번에도 보았는데. 맨날 여기 와서 장사를 하나보다.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옷 트럭 앞에 멈춰 섰다.


"구경 좀 해도 되지요?"

"아 그럼요. 얼마든지 구경하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젊은 여자 주인은 친절했다.


"여기서 매일 장사하시는 거예요?"

"원래 가게는 제주 시내에 있는데 이곳으로 자주 와요."

"여긴 해수욕장도 아닌데 바다가 되게 예뻐요. 저는 행원리에 삽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어요. 주로 동네분들이 오시는 것 같아요."

"여기 엄청 유명해요! 인스타에 '코난 비치'로 검색하면 많이 나오거든요. 몇 년 전까진 아는 분만 찾아오는 곳이었는데 요즘엔 아주 핫해졌죠. 관광객들도 많이 와요."

"앗 이름이 있었어요? 코난 비치라고요? 전 혼자서 '행원 바다'라고 불렀는데요. 하하하."

"실은 이곳이 사유지래요. 주인 분이 무료로 개방하는 거랍니다."


레알 제주도민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들었다.(네, 수다는 언제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원 바다'라고 이름 붙인 이곳이 '코난 비치'라니. 코난이란 사람이 인스타에 올리면서부터 알려졌단다. 그래서 다들 코난 비치라고 부른다네. 자신의 아이디를 딴 해변 이름이라. 그분에겐 영광이겠는걸. 하지만 난 꿋꿋하게 '행원 바다'라고 부르련다. 마음속 나만의 바다니까. 주제넘게 '소율 바다'라고 안 하는 게 어디야,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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