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 7일의 귀향 일정 중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섞여있다.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서울성모병원과 우리 동네 내과 방문도 집에 오면 반드시 끼워 넣는 일이다. 유방암 치료 후 불면증과 고지혈증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내려가면서 가능하면 모든 일을 도내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처음엔 제주시의 종합병원인 한마음병원과 읍내(세화리)의 내과를 다녔다. 이전과 똑같은 성분이라곤 하는데 한마음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없었다. 읍내 내과에서는 지나치게 잦은 혈액검사와 내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콜레스테롤 수치가 좋아졌음에도 더 강한 약으로 바꾸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제주도의 두 병원 모두 신뢰가 떨어졌다. 나는 어차피 이런저런 일들로 거의 매달 과천 집에 오는 형편이었다. 할 수 없이 병원 진료를 원위치시켰다. 가능하면 서울성모병원의 진료 예약 날에 맞춰 오는 날을 잡는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점심을 사 먹는다. 그리고 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화요일에도 같은 루틴이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가방이 매우 무거웠다는 것, 게다가 24인치 캐리어. 보통 때는 길어야 2박 3일이라 작은 백팩 하나만 메고 온다. 이번엔 거의 1주일에 달하는 일정, 백팩으론 어림없었다. 갈아입을 티셔츠, 속옷, 바지와 함께 시간 날 때 걸으려고 운동화를 넣었다. 그 외 화장품 등 자잘한 것들. 사실 기내용 캐리어로 충분하다.
그러나 내 건 하필 24인치 가방이었다. 공간이 많이 남았다. 가볍든 무겁든 어차피 부쳐야 할 짐. 이 기회에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가야겠다 싶었다. 집안을 둘러보니 모두 당장 써야 할 물품들. 에라 안 읽는 벽돌책이나 도로 갖다 놓자. 몇 년 전에 읽었던 벽돌책 몇 권(이기적 유전자, 서양미술사, 총 균 쇠, 사피엔스 등)을 가지고 왔었다. 각 잡고 다시 읽으려는 기특한 시도였으나 결론은 실패. 안 읽는다.
어설픈 제주살이에 야금야금 짐이 늘었다. 걱정이었다. 겨울에 집을 정리할 때를 대비해 하나라도 줄여 놓으면 좋겠지. 김포공항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과천 집으로, 오갈 때가 문제긴 한데. 무겁고 커다란 가방을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긴 힘들 것이다. 가방 빈자리 채우려다 택시비 폭탄 맞는 거 아닐지. 평소엔 놓고 갔던 노트북도 챙겼다. 기간이 기니까. 작은 휴대용이 아니라 무겁고 큰 사무용 노트북이다. 하여튼 이번 일정엔 여러모로 짐이 늘었다.
10시 50분 발 제주항공. 김녕에서 9시 7분 행 급행 버스(101번)를 타면 10시 2분에 공항 도착 예정이다. 남은 50분 동안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려면 빠듯했다. 지난 3월쯤부터 제주공항에 주차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새벽에 가지 않는 이상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김녕리까지 내 차를 타고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뒤, 급행 버스를 탄다.
큰일이다! 공항에 버스가 10분 늦게 도착했다. 남은 시간 40분. 탑승까진 겨우 10분. 아슬아슬하게 뛰어야 하는 시간. 내가 참 싫어하는 순간이다. 10시 50분 김포행 승객은 무조건 데스크로 오라는 방송이 울렸다. 나는 헐떡이며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대로 달렸다. 간신히 게이트에 도달. 이미 탑승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았다고! 나는 고를 것도 없이 잡히는 대로 감귤 타르트 세 박스를 샀다. 명색이 제주도민인데 모임에 빈손으로 가긴 모양이 빠진다. 요즘 제주 과자쯤이야 대단치 않은 선물이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낫겠... 지?
매달 타는 비행기는 감흥이 1도 없었다. 고작 한 시간이 지루했다. 김포공항에 내려 가방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나의 파란색 캐리어는 금방 나왔다. 캐리어, 노트북 가방, 과자 봉지, 어깨에 맨 가방. 손은 두 개인데 짐이 네 개. 노트북과 과자 박스 3개를 캐리어 안에 쑤셔 넣었다. 오우, 완전 묵직하다. 전철은 깨끗이 포기했다. 돈가스로 배를 채우고 나는 택시 승강장으로 돌진했다. 네이버 지도로 보면 약 3만 원이 예측된다. 이럴 때 통 크게 쓰자고!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곧 내 차례가 돌아왔다. 기사님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어주셨다. 나는 차 안에서 물어보았다. "병원까지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까요? 보통은 제가 전철을 타는데 오늘은 가방이 무거워서요. 공항에서 멀리까지 택시를 타 본 적이 없거든요." "아이구, 가방이 꽤 무겁던데요. 전철은 못 타시죠. 택시비는 아마 2만 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 나올 겁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알이 뻑뻑했다. 아 벌써부터 피곤하면 안 되는데. 제주에서 서울까지 여정은 늘 번거롭다. 제주살이 이전, 그저 제주로 여행을 떠날 때는 모든 과정이 즐겁기만 했다. 일상에서 자주 공항을 드나드는 일은 고단함 그 자체. 한참을 달려 드디어 병원 도착. "길이 막히지 않아서 2만 5천 원 밖에 안 나왔네요." 기사님은 내가 택시비를 신경 쓰는 게 신경 쓰였나 보다. 드물게 착한 기사님을 만났다.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다니기 시작한 서울성모병원. 10년이 넘도록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의사를 만나 별일 없이 잘 지냈다 얘기하고 같은 약을 처방받았다. 약은 항상 병원 맞은편 조달 약국에서 산다. 가장 가까워서. 남편이 시간이 난다며 데리러 온단다. 잘 됐다. 택시를 타도 상관없지만 남편 차가 편하지. 나는 약국 옆의 카페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행원리에서부터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는 휴식시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