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Apr 13. 2023

나는 왜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긁는가?


분명 내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 뒤통수를 후려맞은 것처럼 기분이 더러워지는 일. 내가 족히 일 년에 한 번씩은 저지르는 실수. 아 도대체 왜. 운전한 지 오 년째 접어들었는데 여태 이런단 말인가! 교통사고라기엔 어이없는 만행을 가끔 일으킨다. 주차하다가 혹은 주차된 차를 빼다가 이상하게 옆 차를 긁어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죄 없는 펜스에 내 차 범퍼를 갖다대기도 한다.  



처음 운전을 시작한 해는 초보라서 그렇다고 자위했다. 근데 매해 초보일 순 없잖아. 작년에도 제주도 동백동산에서 주차하다가 서있는 다른 차를 긁었다. 자동차보험회사에 사고 접수를 하면 "아, 도로에서 사고 난 게 아니라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긁으셨다고요?" 하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가만히 있는 차를 왜??'라고 황당해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당신도 어이가 없죠? 나는 더해요.


어제 아침, 약속에 늦었다. 우리 빌라는 내부 주차장이 부족해 바깥쪽에도 야외주차를 하게 되어있다. 공간이 좁아 조심스레 차를 빼야 한다. 평소엔 잘만 했다만. 은연중 서두르다가 한 박자 빨리 핸들을 돌렸나 보다. 왼쪽에서 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아악, 멀쩡히 있는 옆 차를 또 긁었어! 위층 집 차였다. 2년 전에도 같은 일로 차를 수리해 준 적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지체를 할 수가 없었다. 소리로 봐선 살짝 닿은 것 같지만. 일단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영혼은 주차장에 두고 몸만 그곳에 있을 뿐. 볼 일을 보고 얼른 돌아왔다. 그 집 차를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라이트 윗부분이 조금 긁혀 있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죄를 고백하고 미안함을 전달했다. 두 번째라니, 민망해라. 보험회사에도 연락을 해 처리를 부탁했다.


스스로에게 매우 기분이 상한 채 집에서 자숙을 해야 옳건만. 그날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가를 떠나는 아들을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던 것이다. 비행시간과 공항버스 시간이 맞질 않아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걸어가든 뛰어가든 알아서 가라고 하고 싶었다. 아침부터 일을 치르고는 인천공항까지 왕복이라, 괜찮을까? 그러나 이미 해버린 약속이고 대안이 없었다. 이날따라 그놈의 약속들이 내 덜미를 잡는구나.


엄마의 영혼이 살짝 가출한 상태를 감안하여 갈 때는 아들이 운전을 했다. 여유 있게 도착해 늦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여친과 시애틀에서 만나는 일주일의 휴가. 그중 이틀은 일을 마저 해야 한다네.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쓴다고 해서 바로 헤어졌다. 일명 롱디 커플인 아이들은 가끔씩 10시간의 비행을 감수한다. 휴가인데 일은 완전히 놓고 오지 그랬냐, 어쨌든 재밌는 시간 보내라. 등등 당부를 하고 돌아섰다.


공항에서 집까지 70km, 조금 겁이 났다. 장거리 운전은 자주 하질 않아서 긴장이 되었다. 내 집 주차장에서도 사고를 내는 사람이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자신감이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급 하강하는 게 느껴졌다. "엄마, 닥치면 다 해. 고속도로만 쭉 달리면 되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할 수 있다!" 아들은 엄마의 운전 실력을 믿지 않는 얼굴로 말만 반지르르하더라.


어쩌겄어요, 우야든동 집까지 무사히 가야죠. 내비가 나를 구원하리라. 너만 믿는다. 역시 내비만 보고 달렸다. 아들 말대로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한 시간 만에 가뿐히 집에 도착. 아니 이렇게 운전을 잘 하는데 왜 주차장에선 뻑하면 차를 긁을까요??


나는 사실 운전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남편 등쌀에 면허를 땄지만 10년이 넘게 장롱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운전을 결심한 건 2019년. 우선 내 차부터 장만했다. 부담 없는 경차 모닝으로. 남편 차는 늘 집에 없어 나에겐 남의 차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조건 나만의 차가 있어야 실력이 는다고 판단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나에겐 엄청나게 친절하고 실력이 출중한 운전 연수 선생님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마음에 딱 드는 분을 만나 여러 번 연수를 받았다. 그렇게 거북이가 기어가듯 살금살금 배운 운전이었다. 작년 제주 일 년 살이도 운전이 가능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선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오.


운전 햇수와 상관없이 나는 주행 거리가 아직 부족한가 보다. 남편 말에 의하면 차가 몸의 일부처럼 움직인다던데 그런 경지는 멀었고요. 참 남편은 내가 보험회사를 불러야 할 때마다 별거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것 하나는 정말 정말 고맙다. 나도 내가 한심한데 옆에서 같이 한심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사고가 나면 당황하지 말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라. 그러라고 보험료를 내는 것이다.' 자동차에 관한 한 대인배이시다.


서두르거나 불안하거나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돌아보면 내가 주차장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의 컨디션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대개 서툴고 예민하다. 한마디로 순발력과 공간 감각이 떨어진다. 겁쟁이로선 평생의 숙제 같은 운전을 마침내 익힌 것 자체가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여전히 실수를 남발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나에게 좀 더 관대해야 하지 않을까. 거북이치곤 괜찮은 거라고. 누구에게나 남보다 유독 못 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그걸 인정하고 기대수준을 낮추는 게 낫다. 나만의 속도로 가겠다는 평정심이 필요하다. 자신을 구박하기보다는 효과적인 방법일 게다.


대신 오늘의 컨디션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공주님 모시듯이 나를 살피는 것. 내가 자꾸 놓치는 부분이다. 뭔가 힘들다 싶은 날은 운전석에 앉아 출발하기 전에 심호흡을 깊이 해야겠다. 좋지 않은 상태를 고려하여 몸과 마음을 최대한 이완하기. 그럼 어이없는 실수를 줄일 수 있겠지. 언젠가 운전대가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꿈같은 날이 오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스타일과 성질머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