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 Sep 02. 2019

'봄밤' 리뷰북에 실리다-안판석 감독님이 내 글을?

드라마 팬덤의 진화, 리뷰북과 그밖의 무수한 자발적 활동들에 대하여 

8월 초, 여름휴가 중 신박한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브런치를 통해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내가 이곳 브런치에 쓴 드라마 봄밤 리뷰(봄밤', 사랑이란 편견에 맞설 용기를 갖는다는 것 https://brunch.co.kr/@soyunp/16)를 리뷰북에 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리뷰북은 봄밤 작가, 감독, 배우들에게 전달되는 팬북의 일종으로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지 않으며, 자신은 '스탭'이라고만 밝혔다. 


난 하와이에서의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며 아쉬움에 젖어있었는데, 이 의문의 메일이 꽤나 큰 위로처럼 다가왔다. "소연님의 봄밤 리뷰가 인상깊었고, 작가감독배우분들도 접하면 인상깊게 느끼실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특히 그랬다. 일상에 복귀해도 재미난 일 하나는 예정된 느낌이라 그랬다.


한국에 돌아온 난 답신을 보냈다. 간단히 수락 여부만 답할 내가 아니었다. 리뷰북이란 게 무엇인며 정확히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리뷰는 몇 편이 실리는지, 내 글이 편집될 가능성도 있는지 등등 엄청난 질문을 쏟아냈다. 놀라운 건 내가 메일을 보내고 1분 후 발신확인이 됐고 15분만에 답장을 받아볼 수 있었단 점이다. 일처리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이란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리뷰북은 안판석 감독, 김은 작가, 정해인 배우, 한지민 배우, 제작사 제이에스픽쳐스 관계자 2명 등 총 6명에게만 전달된다고 했다. 리뷰는 30여편이 실리는데 연예부기자와 칼럼니스트의 글도 포함되며, 내 글은 절대 임의로 편집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 리뷰북은 MBC 제작이 아닌 '팬메이드'로, 드라마 팬들이 감사의 의미로 제작하며 작가, 감독, 배우들이 놓쳤을지 모르는 좋은 리뷰를 모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했다.


내 최측근이자 저명한 팬덤문화 연구자인 민지언니에게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리뷰북은 드라마 팬덤 관련 저작물 중 역사가 꽤 오래된 것으로 해당 드라마 팬들의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경써서 제작한다고 한다. 배우들도 리뷰북은 흔히 제작되는 게 아니라 인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인기드라마는 종종 팬들이 가수요를 조사해 DVD나 블루레이를 제작하는 건 알았지만 리뷰북은 몰랐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민지언니의 예상대로 이 리뷰북의 제작 주체는 디씨 '봄밤갤러리'였다.


봄밤갤러리를 들어가 보니 리뷰북 외에도 소취북(소원성취북), 서사북, 트로피를 자체 제작하고 벚꽃선물세트도 전달하는 듯했다. 비용 모금부터 물품 제작과 전달 등 모든 일들은 철저히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 체계성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봄밤'이란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온라인 공간에 모인 이들이 자발적 재능기부를 통해 너무나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단 사실이 놀라웠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결코 누군가의 독단이 아닌 투표로 이뤄졌고 댓글 등을 통한 의견교류도 활발했다. 리뷰북에 들어갈 글도 팬들의 의견을 토대로 선정된 것이었다. 모든 돈 정산은 영수증을 사진으로 첨부할 정도로 투명했고 선물 전달 등 중요 일정은 전후에 사진으로 기록해 공유했다. 총대를 맨 스탭들은 본업을 제쳐둘 정도라면서도 즐겁게 수고를 자처하고, 다른 이들은 이 수고에 충분히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매우 이상적인 분업 구조가 작동한다. 어떤 기업이나 조직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지난주, '스탭'이 약속대로 완성된 리뷰북의 PDF파일을 보내왔다. '퀄'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내 글은 뉴스/칼럼이 아닌 순수 리뷰 18편 중 하나로 분류됐다. 18편의 글 중 다수가 봄밤갤러리 게시물이거나 장면 설명 위주란 점에서 내 글이 선정된 게 더욱 기분 좋았다. 연예부 담당은 아니지만 기자이면서 뉴스/칼럼이 아닌 쪽에 실린 것도 짜릿했다.



난 리뷰를 왜 쓴 걸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삼 생각해 봤다. '봄밤'이란 드라마 리뷰를 이곳에 남긴 이유를. 글로 의미를 되새기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사실 마음 속 한구석엔 '드라마를 이렇게 읽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작가나 감독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 혹시라도. 내 책상 위 노트에 쓰면 작가나 감독이 볼 가능성이 전혀 없겠지만 인터넷에 쓰면 가능성이 없진 않으니. 내가 작품을 읽은 방식이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러한 감상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달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리뷰북은 그들 손에 전달됐지만 내 글이 읽힐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단 사실로도 매우 신난다. 물론 내가 푹 빠졌던 한지민, 정해인 배우가 내 글을 읽을 수 있단 사실도 당연히 매우 기쁘다. 팬덤의 힘은, 내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 일의 가능성을 높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팬덤은 권력이기도 하다. 온라인상의 수많은 리뷰 중 무엇을 넣고 뺄지를 결정한다. 리뷰북을 만들 만큼 팬덤이 강력한 드라마와 그렇지 못한 드라마가 여지없이 갈린다.


드라마가 뭐길래 이런 많은 일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또 다른 세계. 그 세계가 종영해도 팬들에게 그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틈날 때마다 정주행하기도 하지만 꼭 다시 보지 않더라도 그 세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시 그 세계 속에 빠져든다. '갤러리'는 그 세계의 영원불멸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좋은 드라마는 판타지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드라마를 보고, 리뷰를 쓰고, 그밖의 수많은 일을 한다. 한국의 드라마 팬덤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BTS 팬덤만 연구할 게 아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디씨갤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드라마 폐인들의 진화된 활동들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드라마 덕질을 계속할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밤', 사랑이란 편견에 맞설 용기를 갖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