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세입자-집주인과 다른 점은? 현대사회 결혼의 의미를 질문하다
드라마 마니아계의 거성인 내동생과 고모의 줄기찬 추천에도 몇 년을 미뤄온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정주행했다. 난 원래 ‘계약결혼’ 같은 클리셰를 좋아하지 않아서 초반엔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저그런 트렌디 드라마겠지 했는데, 뒤로 갈수록 마음이 몽글몽글 짠해지고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계약결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통 서로의 니즈가 맞아서 결혼이란 제도에 동의했다가, 그 과정에서 진짜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그린다. 극중 세희(이민기), 지호(정소민)도 비슷하긴 한데 계기가 넘 하찮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양이에게 제 때 밥을 주고 분리수거를 해줄, 무엇보다 빠른 대출금 상환을 위해 월세를 내줄 동거인(세입자)이 필요한 세희와, 남동생의 갑작스런 속도위반으로 자취집을 신혼집으로 내주게 된 지호. 둘은 같이 있음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약을 맺게 된다. 심지어 초면에 사고처럼 한 뽀뽀는 “우린 이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증거이자 결혼 결심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하지만 같은 집에 산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세희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지호. 외롭게 혼자 분투해온 지호에게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 ‘우리’의 의미는 작지 않았다. 세희의 경계심도 오래 가진 못한다. 과거 사랑에서 큰 상처를 주고받은 세희는 ‘행복하지 말라’는 전여친의 말에 사로잡혀 살다가 지호를 만나면서 서서히 행복을 꿈꾸게 된다.
드라마를 보며 결혼이란 뭘까 생각하게 됐다. 세희와 지호는 분명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닌데 사랑해서 결혼한 웬만한 커플들보다 잘 산다. 같이 있음 불편하지 않단 게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이 아니었을까.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잡힌 성인이라면 더더욱 누군가 같이 살며 거슬리는 게 있을 수밖에 없다. 불타오르는 마음보다 생활습관과 가치관이 맞고 인성이 바르게 갖춰져 있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둘은 서로 진짜 좋아하게 되면서 서로가 불편해진다. 신경이 쓰이게 된단 뜻이다. 기대치가 생기고 서운해지고. 그러다 지호가 불현듯 이혼을 선언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들의 평가가 갈리는 듯한데, 난 이해되는 전개였다. 계약결혼을 끝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관계였으니.
세희 전여친인 고정민(이청아)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행복해져라 세희야.” 이 말이 참 오래 남았다. “말도 입 밖으로 뱉어야만 사람 마음에 가서 닿는다.”
서브 커플들도 하나같이 공감이 됐는데 특히 마대표랑 수지. 그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마대표의 대사.
“사실 네가 좀 어려워. 그 뾰족함이 버거울 때가 있어. 근데 있잖아 나는 네가 많이 좋나봐. 너의 뾰족한 창들이 나를 막 찌르는데도 그게 너무 아픈데도 나라도 찔려서 그 창이 무뎌진다면 참 다행이다.”
호랑과 원석은 대학시절 연애를 떠올리게 하는, 누구나 공감할 캐릭터. 누군가는 일적으로 원대한 꿈을 갖는데 호랑은 결혼이 꿈이라고, 그걸 비하할 순 없을 거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호랑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됐다.
이밖에 지호가 보조작가로서 겪는 수난, 여자가 결혼하고 일을 한다는 것, 전세난과 집값 폭등 �♀️, 소개팅어플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어쨌든 이번 생은 모두에게 처음이니 건투를 빈다는 낙천적인 결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