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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Mar 02. 2019

지금 빛나는 순간을 사는 사람들 | 고성 유니언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 [강원]

<어디가시나들>은 서울토박이&경기토박이로 자란 두 가시나들의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평일엔 도시에서 쳇바퀴를 굴리며 살다가, 주말이면 로컬 청년을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가시나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모든 용기 있는 시도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좋은 것들을 그러모읍니다. 



그동안은 몰랐다. 고성의 매력을. 동해안을 끼고 길게 자리잡은 땅덩이. 북쪽은 북한과 경계를 나누고 있지만 남쪽 끝은 속초와 인접해 있어 생각보다 접근성이 좋다. 이미 번잡해진 양양의 해변에서 아등바등 경쟁하며 파도를 잡는 대신 물 맑고 수려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서핑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성을 향하고 있다. 지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고성은 ‘8경, 8미’ 공식처럼 외우고 있던 오래된 고성과는 다르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오면 단 10분. 캔싱턴해변과 봉포해변을 지나 경동대학교 글로벌캠퍼스까지 보이면 고성군 천진해변에 다다른 것이다. 초승달 모양의 자그마한 해변가 주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들쭉날쭉한 건물이 제멋대로 솟아있다. 대부분은 숙박 시설이다. 빼곡한 모텔과 펜션 옆엔 틈틈이 회를 파는 음식점,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익숙한 해수욕장의 경관을 형성한다. 근처에 대학이 있지만 학기 중을 제외하면 좀처럼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들이 기꺼이 놀만한 콘텐츠도 공간도 없기에 방학이 오면 그들은 철새처럼 돌아가버린다. 때문에 대학생들이 머무는 원룸 숙박 시설이 여름 한철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 시설로 이용된다. 1박에 70만 원을 호가하는 풀빌라식 고급 펜션부터 원룸촌의 저렴한 민박까지 쓰고 싶은 돈의 규모에 따라 갈 수 있는 숙소는 많지만 주인과 문화 코드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새로움과 독특함이 있어 다시 천진해변을 찾는 이유가 되는 매력적인 공간은 드물다. 여름 한철, 바닷가를 찾는 관광객들은 잠깐 왔다가 금세 다시 떠나버린다. 바다, 해변, 속초 근처. 원체 주어진 지리적 조건 외에 이 동네를 대표할만한 특별한 공간, 로컬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 오래오래 가꾸며 지켜나가고 싶은 고성만의 문화는 왜 없을까.


독특하지만 조화롭게, 유니언만의 문화를 공유하다

올해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유니언(Union)’은 도미토리 숙소 2칸, 2인실 숙소 2칸으로 구성된 작은 컨테이너형 숙소다. 바닷가 서핑 포인트 바로 앞에 위치했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공간 자체는 좁지만 전 객실 한 면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트여있다. 작은 방이 넓은 바다를 품은 셈이다. 일반적인 숙소의 시각으로 보면 난해하다. 새하얀 방, 새하얀 침대, 새하얀 커튼. 방 안에 쓰레기통은 없는데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였다. 체크인은 저녁 6시부터 가능하며 체크아웃 시간은 낮 3시, 넉넉하다. 해가 있을 때는 바닷가에서 서핑 하거나 마음에 드는 동네 펍과 카페에 가서 실컷 논 다음 늦잠까지 자고 여유롭게 돌아가라는 얘기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무슨 음악을 틀어야 할 지 고민된다면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공유하는 유니언만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음악 리스트를 참조할 것. 밤바다를 안주로 음악을 들으며 친구와 얘길 나누다가 바다 위로 해 뜨는 것까지 보고 늦은 잠을 청하면 유니언에서 보내는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천진해변의 다른 숙소와 다르게, 유니언을 빛내는 특별한 매력은 고옥을 개조해 만든 커뮤니티 공간이다.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된 마당 한 켠 작은 집이다. 제각기 다른 방에 머무는 게스트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한데 서로 어울리며 놀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게스트하우스 대표와 자연스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겨울에 숙박객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감자를 구워 먹을 수도 있는 작은 아궁이가 가동되면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을 터.


로컬 청년이 만들어가는 고성 바이브

공간을 운영하는 윤산 대표는 지난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에어비앤비(Airbnb)와 함께한 강원지역 공간재생형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통해 발굴한 지역 청년이다. 고성에서 자라 서울에서 살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그의 꿈은 유니언을 찾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을 찾길. 고성의 청년들은 낯설고 감각적인 문화를 만나길. 그는 여유를 찾은 사람과 찾아가는 사람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유니언’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숙소에서 머지 않은 곳에 유니언과 비슷한 하얀색 건물이 있는데 역시 윤산 대표가 운영하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다. 재즈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밤이 깊으면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2층에는 슬라이드로 영화 장면이 계속 재생되는데 음악과 영화를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다. 그는 올여름 이곳에서 오랜 고향 친구와 함께 일본식 돈까스 샌드위치인 ‘가츠산도’를 한정 판매하는 팝업을 열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뜨겁게 달구었다. ‘고성에서 가츠산도라니!’라는 열띤 반응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고성으로 돌렸다. #고성맛집 #존맛탱 #취향저격 

언젠가 고성의 바닷가에도 수제 맥주를 손에 든 자유로운 차림의 청년들이 가득하길. 그 순간을 그리며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청년은 자기가 좋아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들로만 채워진 담백한 공간을 만들었다.


강원도 고성군 천진해변길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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