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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19. 2017

사무실은 야생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 거라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동아리 활동 조금, 수학 과외 정도.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이 그러하듯 나도 사무실에서 사회생활을 배웠다.

내가 처음 맡았던 업무는 실무 이외에 관공서 대관업무가 포함되어 있는 업무였다. 
대관업무라 함은 쉽게 말해 공무원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 공문서를 작성하고,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하는 업무를 말한다. 아직 업무도 익숙하지 않은데 회사 도장이 찍힌 문서를 만들어 거의 매주 관공서에 제출해야 한다니 하늘이 노래졌다. 지금까지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 뗀 적 밖에 없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대관업무만 전담으로 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혹여 실수가 있어서도 안되고, 기한을 놓쳐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전담자를 두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도(?) 업무의 완결성을 위해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대관업무만 인수인계를 해준다고 했다.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이 그러하듯 그때는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별할 여유도 없고, 그만한 지식도 없는 법. 가르쳐 주는 대로 따박따박 배우는 수밖에.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너무 까다로운 나머지 이미 전담자와 사이가 틀어진 후였다. 신입사원의 풋풋함으로라도 무마해 보려는 회사의 정책이었다고나 할까.)

거짓말 안 하고 선배님의 숨소리까지 받아 적을 기세로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노트에 빼곡히 적힌 시스템 메뉴명과 필요서류 목록, 공문서 제출기한. 우선 탁상달력에 온갖 형광펜으로 제출기한부터 표시했다.

며칠 뒤, 문서를 한 꾸러미 만들어서 선배님 책상으로 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질문을 했었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몇 마디 듣고 있던 선배님이 내게 툭 내뱉은 한 마디.

○○씨, 잠깐만.
이 업무, ○○씨 일인데
이제 혼자 알아서 해야지.
자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안 그래도 신입사원의 하루하루는 가시밭길인데, 순간 커다란 가시가 가슴팍에 정통으로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대충 서류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도 멘탈이 바스락 거렸던 나는, 더 이상 그 선배님께 질문을 하러 갈 수 없었다. 우리의 인수인계는 그 날로 막을 내렸다. 그렇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야생에 던져졌다.

물론 의도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업무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노총각 히스테리의 끝판왕이었던 공무원과도 머지않아 베프가 되었다. 규정을 읽어나 보고 전화했냐는 짜증 섞인 질문에 3번이나 읽었는데 암만 봐도 몇 페이지 몇 째줄에 있는 내용이 이해가 안 되어 전화했다고 하니 신입사원이 고생한다고 되레 위로를 해주셨다. 가끔씩 서류가 한 장씩 빠질 때면, 미리 챙겨서 전화도 해주고... 아주 가끔은 윗 분들이 왜 일처리를 이렇게 해서 아랫사람 고생시키냐며 같은 편도 되어 주셨다. 


그분이 다른 곳으로 옮기실 때까지 난 그 공무원의 전담 마커로서 회사에서 영향력이 상당했다. 이 모든 것이 일찌감치 야생에 집어던져준 선배의 덕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선배를 만나느냐에 따라 회사생활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느 선배를 만나던, 결국 사무실은 야생이다.

아무리 좋은 선배라 해도 날 끝까지 책임져 주지 못할 것이고, 아무리 나쁜 선배라 해도 날 따라다니면서 해코지 할 만큼 회사 내의 수명이 길지 못하다. 결국에는 나 혼자 배우고, 나 혼자 살아가야 하는 야생.

물론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왜 나한테만 그래? 하는 의문도 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서럽기도 해서, 눈물이 울컥울컥. 

하지만 이왕에 던져질 것이라면 신입사원 때, 야생의 쓴 맛을 빨리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리 녹록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나만의 방법을 빨리 터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기에.

나의 회사생활의 시작이 수월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주변 사람들 또한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사회생활을 배웠고, 나아가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었고, 회사를 떠난 지금도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그만큼 그 속에서 행복하지 않았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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