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과 함께였기에 행복했던 시간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뱃속에 품어서 열 달, 세상에 낳아서 열 달. 그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인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 조막만 하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잠든 시윤이를 내려다보는 내 얼굴에 엷은 미소가 드리운다.


아이를 낳고 혼란에 휩싸였던 내 생활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수유 텀이 정해지면서 밤 수유를 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덕분에 낮에 깨어있고 밤엔 편히 잘 수 있는 감사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색했던 집안일도 이젠 제법 손에 익어가고, 꼬박꼬박 낮잠을 챙기는 시윤이 덕에 오히려 예전보다 잠이 늘어버린 것 같다. 깨어있을 때는 엉덩이를 씰룩씰룩, 머리를 흔들흔들 재미난 율동동요의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숨 넘어갈 듯 시윤이와 까르르 웃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문다. 그렇게 엄마의 시간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간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도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우리 집에 놀러와 하룻밤 수다를 떨기도 했다. 카톡 하나에도 예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안부 연락에도 괜히 신경을 곤두세웠던 적이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 친구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몸이 힘들어서 나 혼자 돋아있었던 때가 있었다. 마음이 누그러지고, 생활에 익숙해지자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달아 어찌 지내냐고 먼저 물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보들보들 젖 비린내가 나는 녀석을 하나 안고 있다는 것뿐. 잠시 미닫이 문이 달린 작은 방으로 건너왔다가 큰 방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울고, 같이 울었던 조리원 커뮤니티의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금 원래 어울렸던 친구들을 만났고, 예전보다 바깥구경이 늘었다. 아이를 낳기 전과 비교하면 턱도 없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원래의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찾은 동네 문화센터에서 엄마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녀들은 육아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로 이사를 나오지 않고 같은 동네에 살며 함께 문화센터를 다니고, 좀 더 어울릴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우리의 카톡창은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식이 뜸해졌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은 그렇게 고스란히 추억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추억이 되었다고 해서 생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카톡창을 열어보면 그 시절, 엄지 손가락이 아플 만큼 핸드폰 창을 두들기며 큭큭 거렸던 우리들의 긴긴밤이 떠오른다. 사진 한 장만 들춰보아도 조리원 퇴소 날 속싸개에 돌돌 말려있던 106호 아기의 핏기 어린 얼굴이 어른거린다. 우리 아들들의 방긋 웃는 얼굴에 녀석들의 첫 뒤집기, 첫 이유식이 겹쳐 보인다.


추억이라고 해서 모두가 흐릿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것들도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스무 달 중에서 그녀들은 꼬박 열 달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그녀들이 나를 엄마로 키워냈다. 엄마 노릇이 서투른 내게 다들 비슷하다며 토닥여 준 사람, 바로 그녀들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던 밤, 싱거운 농담으로 나를 웃겨 준 사람도 그녀들이었다. 한숨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엔 조금만 더 힘내자며 밝은 응원의 메시지로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들과 걸어온 열 달이었다.


물론 엄마로서의 시간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우리의 고민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을 더 할 것인지, 둘째를 낳을 것인지... 우리의 고민은 어쩌면 더 많아지고 더 복잡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커가는 가운데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황량한 벌판에 혼자 삐죽 자라나는 풀떼기가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함께 자라나는 탐스런 풀무덤이기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열 달처럼 누구 하나 외롭지 않고, 누구 하나 힘들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 시간들 또한 웃으며 겪어낼 수 있기를.


산후조리원에서 스쳤던 우리의 사소한 인연.

그 인연이 내게 이렇게 큰 힘이 되어준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이번 60번째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조리원 커뮤니티' 매거진의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글로 남겨지는 것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 준 제 육아의 든든한 지원군,

론이 엄마와 유안이 엄마, 현이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부족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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